민병훈 감독의 '터치'를 뒤늦게 IPTV로 보았다. 볼 때보다 보고 난 후의 느낌이 더 좋은 영화가 있다. '터치'는 볼 때는 먹먹하게 좋고, 보고 난 후의 느낌은 더 먹먹하게 좋은 영화였다. 좋다는 표현만으로는 애매할 수 있으니 충분히 재미있는 동시에 울림이 깊었다는 말도 덧붙여두기로 하자. 이 영화가 개봉된 건 지난겨울 언저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개봉했다, 라는 소식은 들렸는데 내가 사는 도시에서는 상영관을 찾을 수 없었다. 서울 가는 길에 보고 내려올까, 생각했을 때는 감독이 대기업의 스크린 독과점에 대한 항의 표시로 자진해서 조기종영을 결정했다는 보도를 접했다. 그 간격이 불과 며칠이었다. 다시금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애써서 상영관을 찾아볼 의지가 있었던 내게조차 왜 기회가 돌아오지 않은 걸까. 스크린이 무슨 철벽인가. 멀티플렉스의 그 많은 스크린들 중 하나씩만 독립영화 전용관으로 쓰면, 스크린은 벽이 아니라 문일 텐데. IPTV로 보았으니 된 거 아니냐고? 좋아하는 책은 빌려 읽는 대신 책장에 간직하고 싶듯, 좋아하는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는 건 애정의 표현이기도 한 것이다. 그럴 기회를 얻지 못한 나는 관객의 입장에서 억울하다. 이 사소한 억울함으로, 몇 달 전 민병훈 감독이 조기종영이라는 독한 결심을 할 수밖에 없었던 분노를 뒷북 치듯 헤아려 본다. 둥둥둥. 나의 뒷북은 그의 분노에 대한 지지이자 그의 영화에 대한 애정 표현이다.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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