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들이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총기를 쏘고 경찰을 들이받은 뒤 도주, 실탄을 쏘는 경찰과 심야 추격전을 벌였다. 무법자처럼 도심을 누비고 도주한 미군들에 대해 시민들의 비난이 빗발쳤다.
아찔한 심야 추격전과 총격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턴호텔 앞에서 "차에 탄 미군들이 행인에게 공기총 같은 것을 쏜다"는 신고를 받고 용산경찰서 이태원지구대 소속 경찰 2명이 출동한 것은 2일 오후 11시 53분. 경찰은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근처에서 회색 옵티마 승용차에 탄 B(23) 일병과 C(26) 하사 부부를 발견했다. 미군들이 차에서 내리지 않자 경찰들은 차 앞유리를 깨고 검거를 시도했다. 하지만 미군들은 차로 경찰들을 밀치고 6호선 녹사평역 방향으로 달아났다. 불과 2, 3분만의 일이었다.
이를 본 택시기사 최모(38)씨가 미군 차량을 뒤쫓기 시작했고 녹사평역 인근에서 같은 지구대 임성묵(30) 순경을 발견해 태웠다. 미군들은 15분간 시속 150㎞ 속도로 도심을 무법천지로 내달렸다. 3일 0시 10분쯤 광진구 자양동의 주택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서야 헤드라이트를 끈 채 숨었다. 시민의 제보로 미군의 위치를 파악한 임 순경이 택시로 골목을 반쯤 막았으나 미군들은 차량을 후진해 택시를 밀쳤다.
택시에서 내린 임 순경이 공포탄 1발을 쏘며 하차를 요구했지만 미군들은 그를 치고 다시 영동대교 쪽으로 달아났다. 임 순경은 차 바퀴를 겨냥해 실탄 3발을 쏘았고 이 중 한 발이 B 일병의 어깨에 맞았다. 최씨는 "미군 차량이 죽일듯한 기세로 임 순경에게 달려들었다"며 "누가 봐도 미군이 잘못했고 임 순경은 충분히 해야 할 행동을 했다"고 말했다. 임 순경은 다시 택시에 올라 추격했지만 놓쳤고, 병원에서 왼쪽 무릎과 발등을 치료받고 귀가했다.
시민이 추격, 경찰은 뭐했나
경찰의 대응은 미숙했다는 지적이다. 차량에 타고 도주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경찰 2명이 앞유리를 깨고 검거를 시도한 것도 어설펐고, 달아난 미군들을 제대로 추격하지도 못했다. 임 순경을 태운 택시기사가 유일한 전력이었다. 최씨는 "임 순경이 택시에서 무전을 하며 도주 경로를 알려줬다"고 했지만 아찔한 추격전이 벌어진 15분 동안 순찰차는 나타나지 않았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추격전이 벌어진 지역을 관할하는 성동서와 광진서에 곧바로 연락해 출동했지만 미군 차량이 쏜살같이 도주하는 바람에 따라잡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임 순경을 치고 미군들이 도주한 뒤 5분 정도 지나서야 순찰차가 현장에 도착했다.
자양동 골목길에 숨은 미군 차량을 임 순경에게 알려준 것도 근처에 사는 시민 김모(40)씨였다. 그는 "택시에 경찰이 있는 걸 보고 범죄자를 쫓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경찰의 추격을 뿌리친 미군들은 오전 1시 3분쯤 용산 미 8군 영내로 복귀했다. 이들이 탄 차종과 번호판이 관할 지역 경찰에게 전파됐지만 50분 넘게 잡히지 않은 것이다. 총상을 입은 B 일병은 부대에 도착해 "이태원에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총상을 입고 차량을 빼앗겼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차량이 부대 안에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이태원 사건 현장에서 BB탄알이 발견됨에 따라 미군이 쓴 총이 BB탄총일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시민들 무법자 미군에 분노
경찰을 치면서까지 도주한 미군들에 대해 시민들은 격앙된 반응을 쏟아냈다. 회사원 김차연(30)씨는 "보란 듯이 경찰을 따돌리고 치외법권 지역인 부대 안으로 도망친 미군들의 행동은 말도 안 된다"며 "이 같은 범죄가 계속된다면 주한미군에 대한 국민 인식도 악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디 yyn***는 트위터에 "주말 저녁 도심 한복판에서 시민들에게 공기총을 쏴댄 미군들, 어떻게 처리하는지 똑똑히 보고 기억하겠다"고 썼다.
미군 범죄는 2008년 183건에서 2009년 306건, 2010년 377건으로 갈수록 늘고 있다. 현행범으로 잡히지 않는 한 미군의 협조 없이 조사가 어려워 미군들이 범죄를 저지르고 일단 도주하는 일이 많다. 박정경수(33)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사무국장은 "미군 범죄를 제대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크리스 젠트리 주한 미 8군 부사령관은 이날 오후 용산서를 방문해 "이번 사건에 대해 사과하며 전적으로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상 혐의를 받고 있는 차량운전자 B 일병과 차량 소유주인 C 하사와 그의 아내에게 4일까지 출석할 것을 통보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송은미기자 my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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