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덕 정치부장
kdkim@hk.co.kr
“야당은 무엇이든 일단 반대한다.”
이명박정부 초반 한 정치인이 꺼낸 얘기다. 야권 인사의 언급이어서 더 눈길을 끌었다. 친노그룹이 2009년 초 발간한 책자에 들어 있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말이다. 그는 “(야당이) 정책에 대한 비판을 넘어 대통령과 장관의 인격을 공격하는 일도 다반사”라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해 한 케이블TV에 출연해서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야권의 한 중진도 최근 필자와 만나 “야당은 무조건 브레이크를 건다고 볼 수 있다. 일단 반대 입장을 밝힌 뒤 반대 논리를 찾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말했다. 그는 “야권 지도부가 대통령과 여당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면 당내 리더십이 무너진다”고 야권의 풍속도를 솔직하게 전했다. 또 본연의 야당 기능을 설명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정당 정치가 뿌리내린 영국과 미국에서 야당은 ‘the opposition party’로 불리기 때문이다. ‘반대당’이란 뜻이다.
요즘 미국을 보더라도 야당은 반대만 하는 정당이란 느낌을 준다. 공화당은 증세 등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추진하는 정책에 대해 계속 시비를 걸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미국은 연방정부 지출 자동 삭감을 일컫는 이른바 ‘시퀘스터’ 발효 사태를 맞게 됐다.
야당의 계속되는 시비에 대해 여권은 ‘국정 발목 잡기’라고 불만을 토로한다. 요즘 박근혜 대통령도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청와대는 각료 후보자들에 대해 계속 문제를 제기하고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에 협조해 주지 않는 민주통합당을 원망하고 있다.
정부조직법 협상이 계속 지연되는 이유는 여야가 방송진흥 정책의 미래창조과학부 이관을 놓고 대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정보통신기술 융합의 활성화를 위해 방송통신위원회의 IPTV, 종합유선방송국 인·허가권을 미래부로 이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민주당은 정부의 방송 장악을 막기 위해 이관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어느 한 쪽이 이 부분만 양보하면 곧바로 협상이 타결되고 박근혜정부도 정상 운영될 수 있다. 하지만 ‘초반부터 밀리면 계속 밀린다’는 식의 기싸움까지 더해지는 바람에 돌파구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지도부가 없는 야당이 양보 카드를 내놓기가 쉽지 않다. 때문에 정치권에선 “만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야당 대표였다면 이런 교착 상태를 만들지 않았을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선 박 대통령이 한발 물러서야 물꼬가 트일 것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대통령직인수위가 밀실에서 정부조직 개편안을 마련했으니 오히려 대통령이 통 크게 양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박 대통령은 그러나 양보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평소 원칙과 소신을 강조하는 박 대통령은 ‘선의로, 원칙대로 하려는 것인데, 왜 야당이 방해하려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실제 청와대는 “대통령이 구상하는 정부조직 개편안을 국회가 통과시켜 줘야 하는 것 아니냐, 대통령은 열심히 일한 뒤 그 결과에 책임지면 되는 것 아니냐”고 주장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하려면 생각을 바꿔야 한다. 야당의 끊임 없는 반대를 국정운영의 상수(常數)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져야 독선의 정치로 흐르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정치를 축구에 비유하면 상대 진영의 태클 없이 골을 잘 넣는 것은 어렵지 않다. 상대의 태클을 넘어 골을 넣어야 평가를 받을 수 있다. 하늘 위에서는 좋은 뜻만 갖고 있으면 되지만 지상전에서는 온갖 장애물을 헤쳐 나가야 한다. 갈등을 조정해야 하는 정치의 세계에서는 반드시 견제와 균형 원리가 작동돼야 한다. 이를 위해 대통령은 국회의 제동에 화를 내지 말고 야당을 존중해야 한다. 다행인 점은 박 대통령이 참여정부 때 야당 대표를 지냈다는 사실이다. 당시 한나라당도 참여정부의 정책과 인사에 대해 숱하게 브레이크를 걸었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로 태클을 거는 야당과 늘 동행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길이 보일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