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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입력
2013.03.03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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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이 우수했던 석사 학생 한 명이 나를 찾아와, 의학전문대학원 진학을 위한 추천서를 부탁한 적이 있다. 박사과정에 진학하면 학비는 물론 생활비까지 지원해주겠다는 지도 교수의 제안도 마다하고 의전에 지원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비싼 의대 학비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고리의 대출을 받아서 공부하겠다는 대답에 더 할 말이 없었다.

지금도 반값 등록금 실현 여부가 여기저기 회자되고 있지만, 이 문제의 핵심은 등록금의 절대액이 아니라, 교육의 질과 졸업 후 일자리에 대한 비전의 문제다. 만일 좋은 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면 학비가 더 비싸져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고, 그 반대라면 아무리 등록금을 낮춘다 하더라도 여전히 바가지 요금일 것이다. 또 국내 대학교육의 질과 서비스가 천차만별인데, 어느 학교나 비슷한 등록금을 받고 있고, 또 그것을 일률적으로 절반으로 깎아야만 한다는 발상이 황당하기만 하다.

OECD 국가 중 우리나라 대학의 등록금이 미국 다음으로 높다는 것은 잘못된 지적이다. 못 믿겠으면, 지금 영국 옥스퍼드 대학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라. 이 대학의 연간 학비는 9,000파운드, 우리 돈으로 약 1,500만원이다. 대신 부모의 수입이 적은 학생에게는 감면 혜택이 있다. 너무 명문대학이라 비싸도 상관없다고? 그렇다면 영국 웨일즈 지방의 시골, 뱅거에 위치한 대학의 학비를 살펴보자. 마찬가지로 9,000파운드다. 단, 영국 학생들은 학비를 미리 낼 필요가 없고, 졸업 후 취업을 해서 일정액 이상의 월급을 받으면 그때부터 학비를 갚아가야 한다. 우리의 경쟁 대학이라고 할 수 있는 아시아권을 살펴봐도 비슷한 상황이다. 홍콩이나 싱가포르 대학들의 학비는 우리나라 사립대학의 절반 정도지만, 이는 정부의 보조 때문에 가능한 가격이다. 외부에서 유학 오거나 보조금 받을 자격이 안 되는 학생은 2,000만원이 넘는 등록금을 내야 한다.

요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을 지원해 주는 제도가 있는지, 자국 혹은 자기 지역 학생들에게 세금을 투입하여 할인 혜택을 줄 수 있는지, 졸업 후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지, 공짜 점심 주듯이 모두에게 학비를 일률적으로 깎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반값 등록금은 오히려 경제적 도움이 절실한 학생들에게 돌아갈 몫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우수한 졸업생과 수월성 있는 대학을 갖고 싶다면, 학비를 자율적으로 결정하게 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옳은 방식이다. 갑작스러운 변화의 부작용이 두렵다면 정부의 엄격한 관리 하에 일부 대학에서 시범적으로 자율적인 학비 결정과 집행을 허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서울시립대의 반값 등록금이 성공적이라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전혀 다른 측면도 있다. 기본적으로 서울시의 재정 보조 없이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시스템이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도 있다. 이전 서울시장 중 한 분이 '서울과학 장학생'이라는 제도를 만든 적이 있다. 서울 소재 대학에 거주하는 대학원생 중 업적이 뛰어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던 제도다. 이 제도의 혜택을 받은 학생들 중에는 교수들도 엄두를 못 내는 'Nature'나 'Science'지에 논문을 게재한 경우도 수 차례나 있었다. 그런데, 반값 등록금 예산 때문에 우수한 이공계 대학원생들을 위한 지원금은 없어져 버렸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교육부는 대학입학 정원이나 얼마 안 되는 대학 지원금으로 대학을 좌지우지 할 생각은 버려야 한다. 어차피 인구도 줄어들고 지방의 경우 학생 유치도 어려운 상황이라 정원에 목맬 대학은 많지 않다. 또 상당수 연구 중심 대학은 연구비 수주와 외부에서 지원 받는 기금을 주요한 재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대학교육은 의무 교육이 아니다. 사람들이 많이 이용한다고 해도 택시를 대중교통이라 할 수 없고, 성형수술이 성행한다고 해도 의료보험 혜택을 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시장에 맡겨 놓고, 대학 스스로 소비자인 학생들의 심판을 받게 두는 것이 대학 개혁과 등록금 문제 해결을 위한 최상의 방책이다.

강호정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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