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행복기금 운영의 윤곽이 빠르게 가시화하고 있다. 집권 초기에 주요 공약 이행의 토대를 구축하려는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가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기금 출범 지연 우려에 대해 “3월 중에 차질 없이 출범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마련해 철저히 준비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우선 시중은행의 1년 이상 장기 연체자 48만명의 채무를 최대 50%(기초생활수급자 70%) 감면해주는 방안도 마련된 것으로 전해진다.
■ 국민행복기금은 극심한 경기부진에 따른 소득 감소 및 실업으로 은행 등에 진 빚을 갚기가 불가능해진 ‘파산가계’ 구제가 목적이다. 당초 공약은 1조8,000억원의 기초재원으로 10배 정도의 채권을 발행해 18조원의 기금을 마련한 후 채무불이행자 약 320만명의 채무를 감면해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단 기초재원 규모를 줄여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신용회복기금 8,350억원으로 하되, 기금 확대를 위한 채권 발행도 상황을 보며 신중히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 한계상황에 빠진 채무자를 돕는 방식은 이렇다. 우선 기금이 은행으로부터 연체 채권을 산다. 1년 이상 연체 채권 중 손실처리가 불가피한 최악의 채권인 경우 원금의 10%도 안 되는 싼 값에 살 수 있다. 소득도 없고 재산도 없게 된 사람이 은행빚 1,000만원을 1년 이상 연체한 경우, 기금이 은행의 해당 채권을 100만원 이하에 산 다음, 채무원금을 70% 탕감된 300만원으로 재조정해 장기분할상환 방식으로 갚아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채무 감면은 아무리 불가피해도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낳는 게 문제다. 기업이나 가계는 빚을 안 갚아도 된다는 생각을, 은행 등은 대출을 마구 남발해 채무자가 뒤로 자빠져도 정부가 원금의 일부를 갚아줄 것이라는 잘못된 기대를 갖게 된다. 그래서 정부로서는 모럴해저드가 확산되지 않도록 매우 세심한 정책적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박 대통령의 ‘배려하는 자본주의’를 구현하는 게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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