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호 한국과학기술원(KAIST) ICC(정보통신 융합 캠퍼스)부총장이 "늦깎이지만 열정 하난 둘째 가라면 서러울 과학자"라며 홍순만(57) 한국철도기술연구원 원장을 추천했다.
알고 보니 국문학도였었다. 일할 때 만난 그의 모습에선 감성적인 문학의 분위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는데 말이다. 정부출연연구기관 원장으로 인문계 출신은 거의 드물다. 하지만 새로운 과학기술을 이해하고 추진하는 그의 리더십은 인문계 출신이란 말을 무색하게 한다.
홍순만 한국철도기술연구원장과의 인연이 시작된 건 2009년 하반기부터다. 당시 일면식도 없던 국토해양부 교통정책실 공무원이 갑자기 KAIST 우리 연구팀으로 내려왔다. 우리 연구팀이 개발한 전기자동차 무선 충전 기술 관련 신문기사를 보고 찾아왔다는 공무원은 기술 인프라를 꼼꼼히 살펴보고 돌아갔다.
한달 뒤 이번엔 공무원 40여 명과 함께 교통정책실장이 직접 우리 연구팀을 찾았다. 그 실장이 바로 홍 원장이었다. 무선 충전 차량을 직접 타보고 난 홍 원장은 이 기술을 버스나 철도 같은 대중교통에 적용해보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다. 교통 분야 공무원으로 일한 경험에 비춰보면 신기술을 적용하는 데는 자가용 시장보다 상대적으로 이해관계가 덜 복잡한 대중교통 쪽이 빠를 거라는 설명이었다. 승용차를 대상으로 기술을 발전시키려던 우리 연구팀으로선 색다른 시도였다.
철도연 원장으로 부임한 뒤 홍 원장은 우리 연구팀을 한 달에 두세 번씩 초청해 무선 충전 기술을 철도에 접목시키는 방법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기관장이 과학자들과 연구 현장의 구체적인 기술이나 문제점 등을 놓고 직접 토론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홍 원장은 우리 연구팀뿐 아니라 다른 여러 과학자들에게도 기꺼이 원장실을 개방했다. 빔 프로젝트는 기본이고 화이트보드에 직접 기술을 설명해가며 난상토론을 벌이는 모습은 철도연에선 이제 익숙해졌다.
그렇게 많은 토론과 연구를 거쳐 철도연과 우리 연구팀은 지난달 처음으로 무선 충전 전기열차(온라인 전기열차) 기술을 시연했다. 도로 밑에 무선 급전시스템을 만들기 때문에 이 열차는 전신주나 전차선 없이도 레일 위나 일반도로를 달릴 수 있다. 쉽게 말해 옛날식 전차에서 공중에 설치했던 복잡한 전기선이 없어도 되는 것이다. 실제 연구자도 생각 못한 기술 상용화 방향을 설정하고 소신 있게 밀고 나간 홍 원장이 없었다면 무선 충전 전기열차는 세상에 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홍 원장이 한번은 "지금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국문학과 졸업 후 회계법인에 다닐 때도, 공무원 생활을 할 때도 지금만큼 행복하진 않았단다. 아마도 남다른 탐구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그는 공무원으로 일하는 동안 미국에 유학까지 가 늦깎이로 교통공학 박사학위를 받아올 만큼 과학기술에 대한 열정이 유별났다. 창의적인 신기술을 연구하고 접목하기 위한 그의 노력이 결실을 맺을 것으로 확신한다.
정리=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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