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력에서 원자력으로 다시 화력으로. 정부의 전력공급정책이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화력은 환경(이산화탄소 배출) 때문에 안되고, 원자력은 안전 때문에 안 되고, 그렇다고 신재생에너지는 아직 상업성이 미비한 터여서, 정부의 중장기 전력공급계획은 장기표류 우려까지 낳고 있다.
이명박정부 때만 해도 중장기 전력공급의 무게중심은 원자력이었다. '저탄소 녹색성장'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던 이명박정부는 '공해 없고 발전단가도 가장 저렴한 에너지원'임을 강조하며 원전을 미래전력의 대안으로 강조했다. 이에 따라 이명박정부 때 수립된 제5차 전력수급계획에는 2024년까지 11기의 원전을 짓는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뒤이어 국내 원전의 잦은 고장ㆍ사고로 인해 원전에 대한 국민적 불안이 커지면서 '원전드라이브'는 제동이 걸렸고, 화력으로 무게중심이 다시 옮겨졌다. 원전을 제외한 상태에서 전기요금 안정과 '2027년 전력 예비율 22%'목표를 달성하려 하다 보니, 발전단가가 상대적으로 낮은 석탄화력발전소 확충을 현실적 대안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난달 22일 지식경제부가 확정 발표한 제6차 전력수급계획(6차 계획)에는 총 18기의 화력발전소 신설계획이 담긴 반면, 원전은 5차 계획 때 확정된 11기 이외에 추가증설계획을 유보시켰다. 화력에서 원자력으로 옮겨갔던 발전축이 다시 화력으로 되돌아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환경의 역풍'이 불기 시작했다. 화력, 그 중에서도 석탄화력발전이야말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주범이기 때문. 실제로 전력 1㎾ 생산 시 태양광은 온실가스를 57g, 풍력과 수력은 각각 14g, 8g 배출하는 반면, 석탄은 991g이나 뿜어낸다.
당장 환경부가 발끈하고 나섰다. 환경부는 6차 계획 확정 사흘 만인 지난달 25일 "국가 온실가스 감축정책이 완전히 무시됐다"고 발표했다. 타 부처의 정책과제를 다른 부처가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나선 건 매우 이례적인 일.
환경부는 2009년 12월 코펜하겐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정부가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전망치(BAU) 대비 30%를 줄이겠다"고 발표했는데, 6차 계획대로라면 국제사회에 선포한 약속이 공수표가 된다고 주장했다. 온실가스 30% 감축을 위해선 발전부문에서 26.7% (2020년 기준)를 줄여줘야 하나 6차 계획에 따르면 7.4% 밖에는 안 된다는 것이다. 환경부는 "엄격한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해 향후 화력발전소에 사업불가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고 지경부를 압박했다.
지경부는 온실가스 배출 부담은 인정하면서도, 안전성과 효율성을 고려할 경우 화력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입장이다. 지경부 관계자는 "발전단가 면에서 석탄은 원자력 다음으로 싸다. 환경오염도 없고 안전걱정도 없기로는 태양광 풍력 같은 신재생에너지가 최고이지만 발전단가가 높아 아직은 상업성이 적다"고 말했다. 실제로 1kWh의 전기를 생산하는 데 석탄은 73.6원, 원자력은 28.5원이 드는 반면 풍력은 170원, 태양광은 300원이 넘는다. 결국 화력도, 원자력도, 신재생에너지도 각각의 한계 때문에 주력에너지원이 되기 힘든 상황이다.
전문가들의 주장도 엇갈린다. 유상희 동의대 교수는 "최선의 대안이 없는 만큼 화력발전소 자체는 허용하되 온실가스 배출문제는 석탄연소기술 개발, 배출권 거래제 등으로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은 "글로벌 사회가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감축을 주시하고 있는데 이대로가면 2020년 신기후변화체제도 무방비상태로 맞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환경단체 쪽에선 정부가 발전소만 계속 늘려가는 공급확대정책을 중단하고, 차제에 수요억제 쪽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는 "수요억제는 결국 대대적 전기요금인상을 의미하는데 이 또한 국민들이 받아들일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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