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대 대선과정에서 불거진 국가정보원 불법선거운동 논란에 대한 정치권 및 일부 시민사회단체의 항의가 가라앉지 않고 있다. 국정원 여직원의 인터넷 활동 중에서 18대 대선과 관련해 야당 후보를 직접적으로 비판한 글은 포착되지 않았다. 법원도 이를 인정했다. 하지만 야당의 공격은 거세다. 민주통합당 측에서는 국정원 불법선거운동 진상조사위원회를 열어 국정원 직원과 대선 관련 글을 함께 쓴 이모씨를 경찰에 고발하기로 결정했다. 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한국진보연대 등도 국정원 선거 개입 의혹에 대한 엄정한 수사와 국정조사를 촉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정원으로선 협공을 당하는 형국이다.
자유민주주의적 체제 하의 법치국가를 지향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의 유지 및 발전에 합일되도록 국가기관에 대한 엄중한 감시가 필요한 것은 자명한 이치다. 또 국정원의 역할이 정치 불개입, 특정 정파에 얽매이지 않는 가치중립적인 임무수행, 국가 안보 확보, 무한경쟁 속에서의 국가경쟁력 확보에 있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그런데 한가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우리가 세계화로 인한 개방화와 탈냉전이라는 국제정치구조의 변화에 따라 더욱 복잡한 양상을 보이는 국가안보의 위협에 직면해 있다는 점이다. 이런 국제적 흐름에 대한 대응조차 간단한 문제가 아닌데다 이에 더해 날로 교묘하게 한국 사회를 갈등과 혼란으로 몰아가는 북한의 대남전술에 노출되어 있으며, 북한의 핵무기도 큰 위협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렇게 다원화된 국가안보의 위협 속에서 국정원 논란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도 헤아릴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최근 국정원 여직원의 인터넷 활동과 관련해 제기된 국정원의 정치적 개입 의혹은 단순한 비판 차원을 넘어 시사하는 바 또한 적지 않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라 할지라도 북한의 대남 선전선동과 연계되어 있을 개연성이 존재하거나 대한민국의 체제를 흔드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경우 국가안보 차원에서 여론을 바로잡는 것은 국가정보기관의 임무라고 할 수 있다. 국정원의 공과를 면밀하게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업무를 침소봉대해 흔든다면 정보기관의 대북심리전 역량을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북한의 사이버 선전선동을 더욱 조장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이런 우려는 일부 현실화 하고 있기도 하다. 최근 북한이 사이버 공간을 활용한 대남심리전 공세를 더욱 강화하고 있고, 각종 유언비어 확산과 우리 정부 정책에 대한 흑색선전을 왕성하게 펼치고 있는 건 간단하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선진국을 향해 달리고 있는 우리의 위상과 남북 간의 군사적 대치라는 상황적 특수성에 비추어 볼 때 국가정보기관의 역할과 기능은 어느 때 보다 중차대하다. 따라서 정보화·세계화로 대표되는 21세기에 국가안보 차원에서 그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는 사이버 공간에 대한 정보기관의 활동 역시 보장되는 것이 기본적으로 옳은 방향이다. 상습적으로 남남갈등을 유발하는 북한의 사이버 전사들의 공격을 적극적으로 방어할 수 있도록 법적, 제도적 환경을 제공해줘야 한다는 의미다. 또한 대북 정보역량 강화를 위해선 휴민트 정보력 복원 및 강화가 절실하다. 국정원 예산의 대폭 증액이 시급한 이유다.
국가 안보의 최전선에 있는 영역은 군 만이 아니다. 국정원 또한 안보 책임에서 예외일 수 없다. 국정원이 프로 국가정보기관으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채찍과 당근을 적절히 부여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몫이다. 본질을 벗어난 정치권의 상습적인 정보기관 흔들기는 자제해야 하고, 정략적으로 악용하는 행태도 벗어던질때가 됐다.
유영옥 경기대교수ㆍ한국보훈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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