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샘암으로 투병 중인 소설가 최인호(68)씨가 등단 50주년을 맞아 5년간의 투병기를 묶은 신작 작품집을 펴냈다. 신작 작품집이라 명한 것은 책 속에 묶인 글들을 통칭할 마땅한 장르가 없는 까닭이다. 1부에는 그간 가톨릭 서울 주보에 연재했던 ‘묵상록’을 모았고, 2부에는 작가의 말을 빌면 ‘수상(隨想)도 에세이도 아닌, 굳이 이름하자면 연작소설’이라 할 만한 글들을 묶었다. 모두 2008년 5월 첫 수술을 받고 난 이후 쓴 것들이니, 아마도 그의 생애 가장 치열하게 씌어진 글들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암 선고 후 가장 먼저 그를 급습한 것은, 당연하게도, 절망이었다. 몸무게가 10㎏이나 빠질 정도로 고통스런 항암치료와 온갖 검사들. ‘포경수술 말고는 몸에 칼을 대본 적이 없을 정도로 튼튼했던’ 그였기에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가 없었다. 작가는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지금 나에게 불어 닥친 이 태풍이 다름 아닌 죄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병원 복도에서 마주친, 천사와 같은 머리 깎은 어린 환자의 눈빛을 보았을 때, 그의 귀에는 누구의 탓도 아닌, ‘다만 저 아이에게서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는 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19쪽)
‘병은 정신적 행복의 한 형식이다. 병은 우리들의 욕망, 우리들의 불안에 확실한 한계를 설정해주기 때문이다.’(182쪽) 작가는 프랑스 소설가 A. 모루아의 이 말을 인용하며, ‘아아, 나는 글쟁이로서 지금까지 뭔가 아는 척 떠들고 글을 쓰고 도통한 척 폼을 잡았지만 한갓 공염불을 외우는 앵무새에 불과했구나’ 하는 겸허한 자기반성에 도달한다. ‘살아도 온몸으로 살고 죽어도 온몸으로 죽어라’라는 선가의 말을 좋아했던 작가는 마침내 온몸으로 환자로 살겠다는 마음의 준비를 한다.
1963년 한국일보를 통해 문단에 나온 작가는 반세기 문학인생을 정리하는 이 책의 머리말에서 한국문학의 거장다운 관록의 유머마저 보여준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신춘문예에 입선함으로써 데뷔했는데, 그동안 명색이 작가랍시고 거들먹거리고 지냈음이 문득 느껴져 부끄럽다.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죄한다.’ 작가는 책 속에 끼운 기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현재 가톨릭 피정 중”이라고 밝혔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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