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본질은 설득과 타협이다. 하지만 요즘 청와대와 국회엔 정치다운 정치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지난 달 30일 국회에 제출된 정부조직 개편안을 놓고 여야가 여전히 입씨름만 하고 있는 것도, 그래서 박근혜정부가 과연 언제쯤 정상 궤도에 오를지조차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 된 것도 이 같은 정치의 실종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부조직 개편안을 대통령직인수위가 만든 원안 그대로 통과시키려는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를 반대하는 야당 인사들을 접촉해 이해와 협조를 구하려는 제스처를 취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한 여권 인사는 28일 "박 대통령은 2009, 2010년 세종시 수정안 논란 때처럼 주장을 굽히지 않음으로써 뜻을 관철시킬 생각인 것 같다"면서 "국회의원 신분일 때와 달리 이제는 대통령다운 통 큰 정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설득의 정치'가 아쉽다는 이야기다.
민주통합당은 평소 "야당을 국정 파트너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파트너로서 '타협의 정치'를 할 자세가 돼 있는지 의문이다.
민주당은 방송정책 기능을 신설되는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한다는 조항을 문제 삼아 정부조직 개편안 처리에 반대하고 있다. 이것이 새 정부의 온전한 출범을 막을 만큼 국민의 삶과 직결된 중대한 문제인지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하지만 민주당은 28일에도 "박 대통령이 결단하라"는 주장만 되풀이했다. 대통령을 압박해 정권 초 기세를 꺾어놓겠다는 정파적 셈법이 엿보인다.
정부조직법 개편안을 다루는 새누리당 지도부의 정치력은 0점에 가깝다. 당 지도부는 그간 박 대통령의 입만 쳐다보면서 원안 통과를 야당에 요구했을 뿐, 청와대와 야당 사이에서 조정자 역할을 하거나 대안을 찾아 문제를 풀려는 모습은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한 당직자는 "양보 없는 협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은 잘 알지만 정권 초부터 과연 청와대의 뜻을 거스를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느냐"고 해법찾기에 대한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했다. 스스로 무기력증에 빠져있음을 자인하는 듯 하다.
한편으론 정치적 현안이 생길 때마다 나서서 입바른 소리를 하며 주목 받던 여당 내 소장개혁파가 정치가 실종되는 지금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도 그리 보기 좋은 그림은 아닌 것 같다.
최문선 정치부 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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