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형식상 도급계약(사내하청)을 맺고 실제로는 근로자 파견 형태로 일을 시켜온 한국지엠(옛 GM대우)과 협력업체 모두에게 유죄 확정 판결을 내렸다. 법원이 자동차제조업 직접생산공정의 근로자 파견에 대해 형사 책임을 인정한 첫 사례다. 적법한 도급이라고 주장하며 불법파견 노동자를 사용해 오던 자동차 업계의 관행에 대한 사회적 압박이 높아지면서 이같은 고용관행에 변화가 올 것으로 전망된다.
대법원 1부(주심 양창수 대법관)는 28일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국지엠의 데이비드 닉 라일리(64) 전 사장에 대한 상고심에서 벌금 7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또 같은 혐의로 기소된 협력업체 대표 6명 중 김모(57)씨 등 4명에게 각각 벌금 400만원, 이모(61)씨 등 2명에게 각각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한국지엠과 사내협력(하청)업체 사이에 체결된 도급계약의 내용, 실제 업무수행 과정을 볼 때 협력업체 근로자들은 한국지엠 사업장에 파견돼 한국지엠의 지휘와 명령 아래 근로를 제공하는 근로자 파견 관계에 있었다고 인정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위법함이 없다"고 밝혔다. 형식적으로는 도급계약을 체결했지만 실제로는 파견 형태의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현행법상 자동차와 같은 직접생산 공정업무에는 근로자 파견이 불법이다.
대법원은 앞서 2010년 7월에도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행정소송에서 사내하청을 불법파견으로 판단하고, 2년 넘게 근무한 파견근로자에 대해 현대차가 직접고용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라일리 전 사장은 2003년 12월부터 2005년 1월까지 한국지엠과 계약을 체결한 협력업체 6곳으로부터 843명의 근로자를 파견받아 생산공정에서 일하도록 한 혐의로 2006년 벌금 700만원에 약식기소됐지만 이에 불복해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2009년 2월 1심 재판부는 "한국지엠과 협력업체 간 일부 종속성이 있기는 하지만 불법파견이 아닌 적법한 도급계약 관계로 판단된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으나, 2심 재판부는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의 담당 업무가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노동계는 이날 판결에 대해 제조업에서 비정규직인 파견노동을 엄격히 제한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나서야 한다고 환영의 목소리를 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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