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低) ㆍ원고(高)’ 흐름이 지속되면서 우리나라 수출 주력 품목의 타격이 현실화하고 있다. 특히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 신흥시장에서 일본과 치열한 경합 중인 자동차ㆍ철강ㆍ섬유ㆍ일반기계류가 고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트라는 28일 해외무역관 동향보고를 분석한 결과, 엔저 가속화로 해외시장에서 우리 주력상품의 수출 둔화가 심각해졌다고 밝혔다. 불과 3개월 전 80엔대 초반을 오르내리던 엔ㆍ달러 환율은 아베노믹스(아베 내각의 대대적 양적완화 정책)가 본격화한 이후 급속도로 치솟아 현재 달러당 92엔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로 인해 원ㆍ달러환율은 1,150원 위에서 움직이다가 지난달 1,050원선까지 추락했으며 현재도 1,100원을 밑돌고 있다.
가장 피해가 큰 분야는 일반기계류. 일반기계류는 중화권과 동남아, 북미, 유럽연합(EU) 등 거의 전 지역에서 약세를 면치 못했다. 미국 시장에서 국산과 일본산 기계의 가격 차이는 10~20% 수준이었는데, 엔저로 가격경쟁력이 확보된 일본 기업들이 판매가격을 내리면서 격차가 5~10%까지 줄었다. 현지의 한 바이어는 “이 정도 차이면 미국 측 구매자들은 일본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커 한국 제품의 영향력 감소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시장에서도 한국산 금속가공 기계류의 수입 규모가 1년 만에 85%나 급락했다. 한국이 떨어져 나간 빈 자리는 일본과 중국 제품이 빠르게 잠식한 것으로 조사됐다.
자동차는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직접적 타격을 입었다. 도요타, 혼다, 닛산 등 일본 자동차 3사의 1월 판매량은 전년 같은 달과 비교해 평균 15.8% 증가하는 등 판매 호조세를 지속하고 있다. 특히 도요타의 월별 판매 증가율은 2008년 이후 최고치인 26.6%를 기록했다. 반면 현대ㆍ기아차의 증가율은 2.3%에 그쳤고, 점유율도 작년 1월 8.6%에서 7.7%로 하락했다.
중국 시장에서도 일본 업체들은 엔저에 따른 할인 판매 확대에 힘입어 3개월 연속(10.1%→18.7%) 시장 점유율을 끌어 올렸다. 코트라 뉴욕무역관 고일훈 과장은 “일본 완성차 메이커들이 엔저를 바탕으로 보다 공격적인 판매 인센티브를 제공할 것으로 보여 국내 업체들에 위협이 될 전망”이라고 예상했다.
대표적 소비재인 섬유ㆍ의류 분야는 가격경쟁력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큰데다, 중소기업 비중이 높은 점이 걸림돌로 지적됐다. 가령 중국 시장의 경우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생산ㆍ유통하는 일본 기업들이 많은데, 엔화로 대금을 결제하는 한국 중소기업들의 피해가 커 거래선 변경을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철강류는 정작 일본 시장이 문제다. 포스코재팬 관계자는 “일본에 수출해도 원자재는 달러로 거래되기 때문에 엔저와 더불어 최근 급격한 원고가 이중고을 안겨주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철강제품 자체의 국제가격도 올라 일본 업체들은 최근 열연강판의 수출가를 3,000~5,000엔 인상했다.
이에 반해 정보통신과 가전, 조선 등 분야는 해외 시장에서 한국산 선호도와 경쟁력이 일본을 크게 앞서고 있어 엔저 효과가 미미할 것으로 분석됐다.
최동석 코트라 시장조사실장은 “엔저ㆍ원고 장기화에 대비해 해외 공동물류센터 거점을 확대하는 등 비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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