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시절 꿈에 비하면 지금은 너무 화려하게 살고 있는 것 같아요. '투 머치(too much)'죠."
배우 정은채(27)는 구름 위를 걷고 있는 듯했다. 영화 '초능력자'로 데뷔한 지 1년도 안 돼 일일드라마(KBS '우리집 여자들')의 주인공 자리를 꿰찼고, 얼마 전엔 홍상수 감독의 영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의 주연배우 자격으로 베를린영화제 레드카펫을 밟고 왔다.
정은채는 26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학생 때만 해도 영화잡지 표지를 장식하는 것이 최고의 꿈이었는데 막상 이루고 나니 기분이 이상하다"며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28일 개봉한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은 엄마를 캐나다로 이민 보내는 딸 해원(정은채)이 우울한 마음에 학과 교수인 성준(이선균)을 만나면서 겪는 일들을 일기체 형식으로 그린다. "영화 '뒷담화: 감독이 미쳤어요' 촬영장에서 홍상수 감독과 함께 일하는 김경희 프로듀서를 만났는데 홍 감독님 영화와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하셨대요. 그렇게 홍 감독님을 만나게 됐고 그 자리에서 '같이 해보자'는 말을 들었어요. 어리둥절했죠."
평소 홍 감독의 팬이었던 그는 인터뷰 기사를 일일이 챙겨 본 덕에 감독과 처음 만났을 때도 낯선 느낌이 없었다고 했다. 촬영 날 아침에 나오는 '쪽대본'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대본을 받아 보면 대사가 무릎을 치게 만들 정도여서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저게 진짜 나의 모습이구나' 하는 장면이 여럿 있을 만큼 "해원은 나 자신을 많이 닮았다"고 말했다. 영화 첫 장면에서 우연히 가수 제인 버킨을 만난 해원은 잔뜩 흥분해 "당신의 딸(배우 겸 가수 샤를롯 갱스부르)을 닮을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겠다"고 말하는데, 이는 그가 데뷔 초 인터뷰에서 실제로 했던 말이다.
정은채는 "평소 감정의 진폭이 크지 않고 현장에 가서도 좀처럼 긴장하거나 흔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중학교 1학년을 마치고 혈혈단신 영국으로 건너가 8년간 유학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이방인으로서의 삶이 얼핏 스친다. 엄격한 가톨릭계 기숙 학교를 다니며 영화 속의 자유로운 삶을 동경했던 그는 텍스타일 디자인을 전공했던 대학을 휴학하고 2008년 돌아와 그토록 원하던 영화배우가 됐다. 미술로 시작한 예술가로서의 열정은 연기를 거쳐 이제 음악에까지 이르고 있다.
"제게 있어서 성공의 척도는 돈과 명예가 아니라 '얼마나 흥미롭고 즐거우며 새로운 일을 하느냐'에요. 예술적 허영이 조금 있나 봐요."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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