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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과 복지의 이데올로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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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과 복지의 이데올로기화

입력
2013.02.2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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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의 노동정책이 걱정스럽다.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주된 방향은 일자리와 복지 중심의 노동정책을 추구하되, 노사관계는 자율에 맡기고 불법은 엄단하겠다는 정도다. 지나치게 원론적이라는 세간의 평가마저도 과분할 만큼 노동정책에 대한 이해와 의지가 결여돼 있다. '고용과 복지'라는 담론으로 골치 아픈 노동문제로부터 발뺌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이고, 불법엄단에만 의존하는 법치를 위해 자율과 대화를 구실 삼은 듯하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고용과 복지의 이데올로기화다. 이데올로기로 변질된 정책목표는 관념적 도그마로 전락하고 만다. 편을 가르고 극단적 추종이나 저항만을 되풀이케 함으로써, 다양한 대안을 마련하는 데 필요한 소통과 협력을 불가능케 한다. 자칫하면, 산업현장의 부조리를 고발하거나 정당한 교섭을 요구하는 노동자의 목소리마저 고용과 복지의 적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높다. 당장 풀어야 할 노동현안 역시 고용과 복지라는 추상담론에 가로막혀 구체적 해법 찾기가 곤란해진다. 아직도 쌍용차 정리해고나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 등 미해결과제가 산적해 있고, 낼 모레면 새 학기 시작과 함께 1만 여명의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을 판이다.

일자리와 복지의 중요성에 동의하면서도 불편한 이유는 이데올로기화로 인해 껍데기만 남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그 조짐은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우선, 고용과 복지의 선순환을 이뤄낼 대안적 발전모델이 보이지 않는다. 과학기술과 문화중심의 창조경제가 그 기반으로 제시되고 있으나 이미 새로운 것이 아니거니와, 정보통신이나 문화콘텐츠 부문의 일자리는 상위 몇 퍼센트를 제외하고는 비정규직이거나 저임금에 장시간 노동을 요구하는 일자리가 대부분이다. 2조 달러의 무역시대를 열어가겠다는 포부 속에는 이미 한계에 도달한 수출 대기업 중심의 성장모델을 수정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담겨있다. 지금의 양극화가 이러한 발전모델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일 텐데, 이에 대한 성찰이나 대안을 위한 진지한 고민도 없어 보인다. 고용과 복지가 이미 낡은 성장우선주의를 포장하는 레토릭으로 전락한 게 아닌가 싶다. 둘째, 고용과 복지로 노동정책을 '갈음'할 수 있다는 순진한 착각도 한 몫 한다. 엄밀히 말하면, 고용과 복지는 경제, 산업, 교육, 안보 등 모든 정책이 추구해야 할 거시목표이자 과제일 뿐이다. 노동정책의 본령은 성장과 분배과정에서 불가피한 갈등을 관리하고 통합할 기반을 다지는 데 있다. 갈등을 인정하고 인내하며 대화하지 않는 한, 고용창출과 복지확충은 언감생심이다. 셋째, 자율을 강조하는 대목에서는 헛웃음이 난다. 자치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노사관계에서 자율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러나 자율만큼이나 얄궂은 것이 없다는 게 노사관계의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특히 정부가 도피할 피난처로서는 으뜸이다. 새누리당은 쌍용차 문제나 현대차 불법파견문제도 개별사업장의 문제이니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논리로 오랜 동안 방치해왔다. 협애한 노사갈등이 아니라 왜곡된 발전모델의 본질적 모순이 드러난 사회문제란 것을 모두가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넷째, 서로 대화하라는 주문도 공허해 보인다. 더 이상 쓸모를 찾기 힘든 노사정위원회를 대화의 장으로 상정한 탓이 크다. 이에 더해 불법엄단의 원칙도 그다지 와 닿지 않는다. 노사관계의 실정법은 이미 정의에서 멀어진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대화와 법치의 강조는 한손은 뒷짐 진채 다른 한손엔 회초리를 들고 서 있는 무심한 엄부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형제의 다툼을 이해할 마음도, 해결할 능력도 없으면서, 서로 알아서 화해하지 않으면 회초리를 들겠다고 하니, 힘없는 동생만 억울해 죽을 지경이다. 낡은 성장주의, 갈등외면, 구실뿐인 자율과 대화, 신뢰를 잃은 엄단의 법치가 수정되지 않으면 고용과 복지가 이데올로기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시대교체는커녕 또 다른 형태의 패싸움만 부추기고 말게다. 반드시 경계하길 당부한다.

신은종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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