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다른 칼럼니스트와 이런 농담을 주고 받았다. "칼럼니스트들 일하기는 편하게 됐어. 5년 동안 했던 대로 쓰면 되니까." 대선 과정에서 뇌물 먹은 측근들이 줄줄이 드러나는 것을 보면서 박근혜 정부의 인선이 오죽하랴, 이명박 정부 때처럼 비판하면 되니 편하겠다는 농담이었다. 부디 농담이 되길 바랐다.
그런데 뚜껑을 열고 보니 이명박 정부보다 훨씬 더 많이 떨어졌다. 이명박 정부의 첫 인선을 보고 '기준은 진화한다'고 썼는데(2008년 2월 28일자 서화숙칼럼) 이제 공직자의 기준 따위는 땅에 처박힌 시절이 왔다. 박 대통령은 27일 첫 수석보좌관 회의를 갖고 야당의 반대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아 김장수 인사실장이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고 안타까워했다는 데 정작 걱정해야 할 것은 그가 없는 게 아니라 허태열 비서실장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박사학위 논문을 베껴 썼다고 인정한 사람을 비서실장으로 앉히면 누구한테 법을 지키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총리와 장관 후보들의 면면은 점입가경이다. 비교적 낫다는 평가를 받은 이들조차 노무현 정부라면 인선에 들기 어려울 수준이다. 유진룡 문화부 장관 후보는 교육상 위장전입이라고 깨끗이 시인해서 통과했고 유정복 행정안전부 장관 후보는 친형이 80억원짜리 관급 공사 건설수주 특혜를 입었다는 의혹을 받았지만 그렇지 않다는 말 한마디로 비껴갔다. 청문회를 통과한 정홍원 총리조차 땅과 아파트 투기의혹이 있지만 신통하게 돈을 벌지 못했다는 점에서 통과됐다 여겨진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후보와 서남수 교육부 장관 후보는 자녀들이 불우한 처지의 학생들에게 주는 장학금을 오래 받았다. 유 후보는 고액의 공무원 연금을 받거나 로펌에 있을 때이고 서 후보는 교육부 이사관이었다. 퇴임한 외교부와 교육부에서 연구수주를 받았고 다른 기관으로 옮겨 전관예우를 누렸다.
김병관 국방장관 후보와 황교안 법무장관 후보에 이르면 거의 범법자 수준이다. 김 후보는 무기중개업체 고문을 했던 사람이 국방장관 후보로 오를 수 있다는 것부터 놀라운데다 군사지역 내 땅투기를 하고 묘지를 조성했다는 의혹에 천안함 사건이 났는데도 골프를 쳤다는, 공인답지 않은 처신으로 일관했다. 황 후보 역시 과속벌금을 내지 않아 자동차가 다섯 번이나 압류될 정도로 법을 예사로 어겼다. 부동산 투기, 소득세 탈루, 편법증여, 아들의 병역면제의혹 등을 고루 갖고 있는데다 뇌물수수의혹 재벌과 검사들은 제대로 수사조차 하지 않은 전력이 있다. 전관예우로 로펌에서 다달이 1억 가까운 돈을 받았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박 대통령의 태도이다. 윤창중씨는 인수위 대변인 시절 공인으로 자질이안되는 막말과 편향사고가 지적됐지만 청와대 대변인으로 강행했다. 김병관 후보 역시 문제점이 줄줄이 공개되는데도 22일 합동참모본부와 한미연합사령부에 대동하고 나타났다. 이 정도 되면 이명박 정부가 첫 인선에서 농지투기와 위장전입 과도한 부동산 소유, 자녀의 이중국적 등이 문제가 된 남주홍 통일부, 박은경 환경부, 이춘호 여성부 장관 후보와 박미석 사회정책 수석을 자진탈락시킨 것은 양반스럽다 할 정도이다.
당시에도 아들이 병역 중 사법고시 준비를 한 것이 문제가 되었던 원세훈 행정안전부 장관은 사퇴하지 않았고 이듬해에는 국정원장에까지 올랐다. 김정일의 사망조차 텔레비전을 보고야 알고 직원은 인터넷 댓글이나 달고 있는 국정원의 현재 수준은 공직자의 깜냥이 안 되는 사람을 각료로 올린 첫 단추에서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그러니 이보다도 훨씬 떨어지는 사람들이 각료와 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된 박근혜 정부가 만들어낼 미래는 벌써부터 뻔하다. 게다가 5.16은 쿠데타라고 말할 수 없는 사람이 치안을 담당하는 행정안전부 장관과 역사교육을 맡는 교육부 장관이 된다는 것은 퇴보도 이만저만한 퇴보가 아니다.
서화숙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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