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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뒷모습을 가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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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뒷모습을 가꿔라

입력
2013.02.28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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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말이다. 올해는 28일이 마지막 날이다. 2월은 겨울의 끝이고 한 학년의 끝이다. 한 학년이 끝나면 학생들은 한 학년 더 올라가지만, 한 학년이 끝나면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올해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다. 정년을 맞은 사람은 남들의 축하를 받으면서 떠난다. 그러나 그 자신에게는 아쉬움과 회한이 많으리라.

그런 사람들은 예정대로 떠나면 된다. 정해진 삶의 매듭과 고비를 따르면 되는 것이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 정치인을 비롯한 공직자, 사업가 등 상황에 맞춰 스스로 진퇴를 결정해야 하는 사람들은 떠나야 할 때를 잘 알아야만 환영과 박수를 받는다. 남들이 다 물러나기를 바라는데 혼자만 눈치를 채지 못하고 뭉기적 미적거리다가는 욕만 먹기 십상이다.

이형기 시인의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시구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인용하는 작품이다. 제목은 . 분분히 떨어지는 꽃잎을 보면서 나의 청춘, 나의 사랑에 대한 작별을 노래하고 있는 시이다. 파렴치하고 정직하지 못한 행동으로 자리를 떠나게 된 사람들이 이런 시를 인용하는 것은 시에 대한 모독이며 테러다.

그런 사람들은 낯 두껍게도 조지훈의 를 인용하기도 한다.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중략)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이런 시를 인용하면 자기가 꽃이 되고 묻혀서 사는 고운 마음의 소유자가 된다고 착각하는 건 아닌지. 시가 좋은 건 어떻게 알아가지고...

그런 사람들은 자신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며 진정한 슬픔이 뭔지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나태주 시인의 연작시 의 58번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떠나야 할 때를 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잊어야 할 때를 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내가 나를 안다는 것은 더욱

슬픈 일이다.

우리는 잠시 세상에

머물다 가는 사람들

네가 보고 있는 것은

나의 흰구름

내가 보고 있는 것은

너의 흰구름

누군가 개구쟁이 화가가 있어

우리를 붓으로 말끔히 지운 뒤

엉뚱한 곳에 다시 말끔히 그려 넣어 줄 수는

없는 일일까?

떠나야 할 사람을 떠나 보내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잊어야 할 사람을 잊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한 나를 내가 안다는 것은 더더욱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슬픔과 안타까움을 알아야 제대로 된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야 세상이 좋아진다. 어쨌든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하는 것이다. 다시 나태주의 시 .

뒷모습이 어여쁜

사람이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다

자기의 눈으로는 결코

확인이 되지 않는

뒷모습

오로지 타인에게로만 열린

또 하나의 표정

뒷모습은

고칠 수 없다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물소리에게도 뒷모습이 있을까?

시드는 노루발풀꽃, 솔바람 소리,

찌르레기 울음 소리에도

뒷모습은 있을까?

저기 저

가문비나무 윤노리나무 사이

산길을 내려가는

야윈 슬픔의 어깨가

희고도 푸르다.

뒷모습이 아름답게 잘 챙기자. 이것이 2월의 메시지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나? 늘 자신의 뒷모습을 거울로 살펴보고 고쳐 나가야 한다. 뒷모습은 고칠 수 없다는 말이 맞겠지만, 뒷모습을 고치려고 애쓰는 뒷모습이라도 보이고 남겨야 하지 않겠는가? 자, 2월을 보내고 새로 봄을 맞으면서 다 함께 뒷모습 살펴보기, 서로 뒷모습 챙겨주기, 시이작!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 fused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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