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기업 직원 김모(32)씨는 요즘 밤잠을 설칠 때가 많다. 3월 결혼을 앞두고 신혼 집 문제로 여자친구와 갈등을 겪다가 파혼했기 때문이다. 직장 생활 7년차인 김씨는 부모가 재산이 없어 홀로 결혼자금을 마련한 경우. 그가 6년간 월급을 아껴 마련한 목돈은 1억2,000만원. 그런데 이 돈으로 서울에서 전세 아파트를 구하기는 불가능했다. 김씨는 작년 10월 은행에서 5,000만원을 대출 받고 여자친구 집에서 5,000만원을 빌려 경기 남양주시에 전세보증금 2억2,000만원인 105.6㎡(32평) 아파트를 얻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여자친구 집에서 "남자가 집도 못 구해 처가에 손을 벌리느냐"는 불만이 나오기 시작했고, 결국 말 다툼은 파혼으로 번졌다. 현재 16.5㎡(5평) 원룸에 살고 있는 김씨는 "앞으로 누구와도 결혼 할 자신이 없다"며 고개를 떨궜다.
#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2005년 7월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140㎡(42평형) 아파트를 25세 딸(현재 33세)에게 증여했다. 당시 25억원을 호가하던 고가 아파트였다. 현 후보자는 같은 단지에 아파트 한 채를 더 보유하고 있고, 현 후보자 부인도 10억원대 중반인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파크뷰 234㎡(71평) 아파트를 갖고 있다.
한국인에게 부동산은 오랜 기간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해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해 5~6년간 열심히 월급을 모은 뒤 약간의 대출을 더하면 소형 아파트를 장만할 수 있었고, 몇 년 더 열심히 생활하면 중형 아파트로 갈아탈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에게 부동산은 더 이상 희망의 사다리가 되지 못한다. 부유층과 고위 관료의 자제는 결혼도 하기 전에 강남 등의 고가 아파트를 증여 받아 출발하지만, 서민들 자제는 평생 주택 마련을 꿈조차 꿀 수 없을 정도로 주거 양극화가 심각하다.
27일 통계청에 따르면 주택 구입을 사실상 포기하는 20, 30대 기혼 직장인이 갈수록 늘고 있다. 통계청의 인구 전수조사 결과를 보면 2005년에 20대는 자가 17만3,000가구, 보증부 월세 57만가구를, 30대는 자가와 보증부 월세 각각 150만ㆍ74만가구를 보유했다. 하지만 2010년에는 20대가 자가 15만5,000가구, 보증부 월세 67만가구, 30대는 자가 124만가구, 월세 82만가구로 갈수록 '전ㆍ월세 난민'이 급증하는 추세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 기조를 이어가면서 소득은 크게 늘지 않는 가운데 집값은 여전히 비싸기 때문이다. 20, 30대의 지난해 월평균 가처분소득은 330만원으로 연간 4,000만원 수준. 서울의 평균 집값은 3.3㎡당 1,642만원으로 82.5㎡(25평) 아파트를 구입하려면 4억1,000만원이 필요하다. 한 푼도 쓰지 않고 월급을 모아도 꼬박 10년이 걸리는 셈이다.
수도권 외곽의 30평형 아파트를 구입하는 데도 3억원 넘게 들어간다. 결국 젊은 직장인들은 결혼과 동시에 서울 강북이나 수도권 외곽 신도시의 1억~2억원 안팎 전세 아파트로, 학생이나 미혼 직장인은 역세권 원룸이나 도시형생활주택으로 밀려나는 게 일반적이다.
반면 박근혜 정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인사 검증에서 드러났듯, 고위 관료들과 일부 부유층 사이에선 집값 하락 국면을 활용해 강남 등의 고가 아파트를 자녀에게 물려주는 게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국세청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주택 등 건물 증여세 총액은 2008년 2조9,081억원에서 2011년 3조6,860억원으로 불과 3년 새 8,000억원 가까이 늘었다. 특히 2011년에 3억원 이상의 주택을 공짜로 물려받은 사람이 4,655명이나 됐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주택매매 및 전세시장에 진입하는 수요자들이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분화하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며 "주택소유욕이 강한 국민성을 감안해 젊은이들이 안정적으로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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