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정권 ‘가격 억누르기’ 학습효과” 주장도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후 첫 민생 챙기기 과제로 ‘서민물가’를 언급한 건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이른바 ‘정권교체기’에 이뤄진 연쇄적 식품가격 인상 때문이다.
사실 식품업계는 너나 할 것 없이 가격을 올렸다. 예전에는 여론 눈치라도 살폈지만, 이번에는 일단 올리는 데만 열중했다. 마치 ‘지금이 아니면 올릴 수 없다’는 식으로 앞뒤 가리지 않고 가격인상에 나섰다.
첫 테이프는 제분업체들이 끊었다. 지난해 말 동아원이 가장 먼저 밀가루 가격을 8.7% 인상하자 1월 CJ제일제당과 대한제분이 각각 8.8%, 8.6% 올렸고, 지난 20일엔 삼양사가 8~9% 인상으로 합류했다.
다음은 고추장 간장 된장 등 장류 제품이었다. 지난달 CJ제일제당이 장류 제품 가격을 7.1% 올린 것을 시작으로, 간장 제품 점유율 1위인 샘표가 이달 초 7% 인상했고, 고추장이 유명한 대상은 8.4% 올렸다.
한국대표식품인 김치 가격도 올랐다. ‘종가집 김치’로 유명한 대상FnF가 50여개 품목을 7.6% 인상했고, 풀무원도 김치 전 품목을 7% 인상키로 결정했다.
술도 마찬가지. 지난달 롯데주류가 ‘처음처럼’등 소주 가격을 8.8% 인상하고 이달 위스키 ‘스카치블루’를 5.6% 올렸고 국순당은 ‘백세주’와 ‘나폴레온(브랜디)’ 출고가를 3월1일자로 6~7% 인상키로 결정했다.
종전에도 식품업계에선 선두업체가 총대를 매고 가격을 올리면 2, 3위 업체가 시차를 두고 올리는 게 일반적 관행이었다. 그러나 이번처럼 거의 모든 품목에서 무차별적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오른 예는 없었다. 게다가 환율하락으로 원재료 수입 단가가 떨어졌기 때문에, 식품업체들이 내세운 ‘원가인상 때문’이라는 변명도 군색하게 들렸다. 그러다 보니 전체 소비자물가상승률은 1%대에서 안정되어 있음에도 불구, 서민들은 오히려 두자릿수에 가까운 고물가를 체감하고 있는 상황이다.
권력공백기를 틈탄 ‘얌체 인상’은 확실히 문제다. 그렇다고 박근혜정부가 과거 정권처럼 ‘물가 때려잡기’식으로 나설 경우, 큰 후유증을 남길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실 이번 ‘얌체인상’ 자체는 이명박 정부의 지나친 가격 통제가 불러온 학습효과의 결과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 인플레압력이 커지자, 52개 주요 생필품가격을 일일이 따로 관리하겠다고 나섰다. 이른바 ‘MB물가’품목들이었다. 유가가 오르자 정유사와 주유소의 장부까지 뒤져 100원 강제인하를 유도했고, 공정거래위원회는 가격을 올리는 업종마다 특별조사에 나섰다. 그러다 보니 당시 가공식품업체들은 국제 곡물가격 급등에도 불구하고 소비자가격을 올리지 못했고, 올리겠다고 발표했다가 정부압력으로 철회하는 일까지 여러 차례 벌어졌다. 정부 압박 때문에 올려야 할 때 올리지 못하다 보니 인상요인이 계속 누적돼, 결국 지금처럼 정부 힘이 빠진 권력교체기에 한꺼번에 가격을 현실화는 ‘얌체 인상’ ‘소나기 인상’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가격결정과정상의 담합 등 시장불공정행위는 정부가 단속해야 하지만, 과거처럼 찍어 누르는 식으로 가선 곤란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물가안정과 가격통제는 전혀 다르다”면서 “과거 정부처럼 개별품목까지 정부가 통제하려 든다면 오히려 가격왜곡으로 더 큰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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