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백화점 등에서의 신용카드 무이자 할부가 지난 18일부터 다시 중단되었다. 이에 대해 힘센 카드회사와 대형 유통점 싸움에 새우등이 터졌다거나 고객들에게 큰 손해가 발생하게 되었다는 반응 등이 주류를 이루었다.
2011년 한해동안 카드사들이 무이자할부 서비스를 위해 부담한 돈은 약 1조2,000억원이었고, 이는 전체 카드사 마케팅 비용의 24%에 달한다고 하는데, 이 수치만 보면 마치 카드사들이 큰 손해를 감수하며 고객들을 위해 '서비스'한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돈 놓고 돈 벌 궁리만 하는 카드사들이 순수하게 고객을 위해 막대한 출혈을 감수해가며 무이자할부 서비스를 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무이자할부는 숨은 덫이다.
신용카드라는 것은 화폐기능을 할 뿐 화폐가 아니고 긁는다고 카드가 닳아지는 것도 아니니 카드를 쓰는 사람은 '돈을 쓴다'는 관념이 흐릴 수 밖에 없다. 이런 흐릿한 관념은 과다 지출로 연결되기 십상이다. 카드사용자들이 파산을 면하기 위해서는 과다지출을 피해야 하지만, 카드사는 수입극대화를 위해 어떻게 해서든 고객들이 '개념'없이 카드를 긁어 과다지출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개미인 고객이 기관인 카드사를 이길 수 있을까.
카드사들의 주된 수익원은 고객이 카드결제를 할 때마다 가맹점으로부터 받는 1~3%의 수수료다. 수입극대화 전략의 1단계는 먹잇감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다.
신용카드의 핵심기능은 여신제공, 쉽게말해 외상기능이다. 시장상인도 외상을 줄때에는 손님의 신용을 보고 주는게 당연한 이치지만, 카드사들은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일단 카드부터 발급하고 보는 모험을 감행한다. 고객이 행여 연회비 부담을 느낄까봐 '연회비 평생 무료' 약속도 남발한다. 한달에 50만원씩만 결제하면 수수료 2%만 잡아도 연간 수수료 수입은 12만원. 연회비 몇천원은 '껌값'이다. 2012년 기준 국내 경제활동인구 1인당 신용카드 발급장수 4.5장. 카드사들의 1단계 전략은 성공했다.
2단계 전략. 발급받은 카드를 마음껏 긁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고객들의 과다지출을 막기 위한 결제액 한도제도를 무력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결제액 한도가 낮은 고객의 한도를 한껏 올려준다. "고객님의 우량한 신용상태로 한도를 상향해 드립니다"하고 안내하면 감동하는 고객이 있을지언정 항의하는 고객은 없을 것이다.
또 무엇보다 고객들이 자신의 카드지출 현황을 잘 모르게 해야 한다. 일시불 결제는 고객들이 결제현황을 금방 계산할 수 있어 카드지출을 주저하게 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그런데 할부결제를 하게 하면 자금회전은 좀 더디지만 고객들의 과다지출을 유도할 수 있다. 한번에 갚기에는 벅찬 금액이라도 몇 개월로 쪼개면 같은 돈이지만 체감도가 훨씬 떨어져 충동구매를 유도할 수 있고, 또 남은 할부원금을 기억하기 어렵기 때문에 매월 결제금액 관리가 힘드니 초과 지출도 유발할 수 있다. 그야말로 일석이조아닌가.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할부결제를 많이 하게 만들 것인가. 카드의 할부이자가 높으니 무이자할부 서비스를 하고 '높은 이자액수만큼 돈 버는 것'이라고 생색을 내면 고객들은 고맙다며 따라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카드사는 안정적인 수입까지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정부가 신용카드 결제액 소득공제라는 결정적인 당근까지 제공해 준 덕에 카드사의 전략은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고생고생 한달을 일해 월급을 받아도 입금되기가 무섭게 카드사로 훌렁 날아가 버리고 마는 '외상인생'을 살고 있는가. 이번 카드사의 무이자할부 중단 조치로 불편을 당했는가.
카드의 혜택만 쏙쏙 뽑아먹겠다는 호기로 카드를 만들었지만 카드사의 덫에 걸려든 당신은 자신도 모르는 새에 카드사의 노예가 되고 말았다. 절대로 쉬운일은 아니지만 외상과 부가서비스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 노예인생으로 허우적댈 것인지, 자신의 지출을 자기 통제하게 두고 당당하게 주인으로 살 것인지 더 늦지 않게 선택해야 한다. 카드사가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이번 조치는 카드고객들이 자신의 처지를 깨닫게 해준 계기가 되었으니 고맙다고 할 밖에.
장진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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