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되지 않은 자발적 열정과 동기부여가 창조와 경쟁력의 초석이 되는 시대다. "음악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고 피아노는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이라는 피아니스트 손열음(27)씨만큼 이에 부합하는 사례가 또 있을까. 강원 원주의 평범한 가정 출신으로 5세 때 동네 교습소에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손씨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영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최연소 2위로 입상하며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냈고 어느새 국내는 물론 세계 무대를 누비는 한국의 대표 피아니스트 중 한 명으로 훌쩍 성장했다.
하지만 늘 무대를 즐기는 손씨에게도 3월 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독주회는 약간의 기분 좋은 긴장감이 드는 공연이다. 수도 없이 섰던 콘서트홀이지만 오케스트라 협연이 아닌 독주회로는 처음이다. 25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그는 "관객과의 내밀한 소통을 즐겨 그간 자주 섰던 소극장 무대에서보다 피아노를 좀 더 부각시킬 수 있는 작품으로 프로그램을 짰다"고 이번 연주회를 소개했다. 고심한 곡목은 쇼팽의 발라드 2번과 스케르초,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소나타 8번 등이다.
"2부에 연주할 프로코피예프의 소나타는 외국에서는 몇 차례 연주했지만 한국 청중께는 처음 들려드리는 곡이에요. '전쟁 소나타'라 불리는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 소나타 6, 7, 8번 중에서도 작곡가의 다면적인 감정과 기법의 자유로움이 조화를 이룬 걸작이죠."
1부에 낭만적인 쇼팽을 넣은 것은 "다양한 레퍼토리를 소화한다"고 평가 받는 자신의 장점을 살리기 위한 선택이다. 프랑스 작곡가 알캉의 '이솝의 향연'과 러시아 작곡가 카푸스틴의 연주회용 연습곡은 처음 도전하는 곡이다. "모든 연주회에 새로운 곡을 하나씩은 꼭 넣어요. 익숙한 레퍼토리만으로는 타성에 젖을 수도 있고 처음 시도하는 곡이 있으면 연주회의 긴장도가 달라지죠. 걱정이 되기는 해도 스릴 있잖아요."
원주여중을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김대진 교수를 사사한 손씨는 자신에게 따라붙는 '순수 국내파'의 수식어가 이제는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는 2007년부터 독일 하노버 국립음대에서 아리에 바르디 교수를 사사하고 있다. "음악가의 성장은 삶과 결부돼 있죠. 서울의 강박적인 환경을 벗어나 느슨한 분위기의 하노버에서 충분한 자아성찰의 시간을 갖고 있어요. 조기 유학파는 아니지만 한국에만 머물렀다면 배울 수 없는 것들을 유학 생활에서 많이 배웠다고 생각해요."
"독일에서 지내는 동안 평가에도 많이 초연해졌다"는 그는 특히 강박 또는 경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콩쿠르에 대해서도 할말이 많다. 그는 세계적인 권위의 차이콥스키,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 준우승을 비롯해 오벌린, 에틀링겐 국제 콩쿠르 최연소 우승 등 그 누구보다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하는 연주자다.
"어린 마음에 콩쿠르만 끝나면 인생이 술술 잘 풀릴 줄 알았는데 처음 독일에 가서 콩쿠르 수상 경력이 저보다 적은 연주자에게 연주 기회가 더 쉽게 오는 것을 보고 놀랐어요. 콩쿠르 성과 덕분에 많은 연주 기회를 얻은 건 사실이지만 후배들이 콩쿠르가 최종 목표가 될 수 없다는 걸 알았으면 해요."
그에게 꿈을 물으면 "하우스콘서트를 열 수 있는 작은 레스토랑을 열고 싶다"거나 "동료 연주자들과 상생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일을 찾고 싶다"는 등의 매번 다른 답변을 내놓는다. 그래도 여러 대답 사이에 통하는 점이 한 가지 있다. 다양한 피아노 레퍼토리를 소화하겠다는 것. "죽기 전까지 세상에 나와 있는 수많은 피아노 레퍼토리의 90%는 소화하고 싶어요. 제 생애 마지막 연주가 최고의 연주가 될 수 있다면 좋겠네요."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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