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듀오 숨을 만나 국악은 더 이상 흥과 신명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낯섦에 주저하고 당황하거나 때로 날카롭게 대립하는 어떤 심리적 주체, 21세기의 도시를 가르는 20대 여성의 내면을 포착하는 도구로 기꺼이 거듭난다. 2010년 예술의전당에서의 '숨 콘서트' 등 2008년 결성 이후 5차례 가졌던 단독 콘서트는 기존 시각으로 보자면 충격적일지 모른다. 그러나 속내를 보자면 표현의 확장이다.
지난해 서울의 공연장들과 월드뮤직페스티벌 등 크고 작은 무대에 올려졌던 '오후 5시 16분'은 이들에게 접근할 유효한 통로다. "의욕 넘치던 초창기 시절, 강원도 폐교에 가서 작업 중 석양을 바라보다 지은 선율이죠."박지하(29ㆍ피리, 생황)씨가 그들의 작품 중 인지도 높은 이 곡에 대해 설명했다. 아이들이 놀고 간 늦가을 공터를 보는 듯 서정적이다. 그러나'거울 자아'는 가야금을 타악기처럼 두드리거나 혀를 굴려가며 피리를 연주하는 등 파격적 기법의 전시장이라 해도 좋다. 모두 15곡을 헤아리는 그들의 작품은 각각 독특한 색채를 지니고 있다.
이들의 음악에 상투적인 것은 없다. "살면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런 감성에서 비롯된 파격이랄까요."동료 서정민(28ㆍ가야금)씨는 "우리 음악은 한국 신세대 감성의 표출"이라며 "계속 수정해가므로 완성하는 데 몇 달씩 걸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길 가다, 지하철에서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선율은 핸드폰의 녹음 기능을 이용해 붙잡아 두려 애쓴다. 이들의 음악이 생활 속의 성정과 밀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면서 "몇 년 지나도 유치하지 않을 음악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들이 제시하는 새 양식의 국악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다. "해외에서의 반응은 열광적이에요. 무대 뒤로 찾아와 구체적으로 지적하며 소감을 표현하고 가시죠." 그러나 국내에서는 "좋았지만 어렵다" 정도가 그나마 우호적 평가다.
2008년의 첫 무대는 더했다. 가야금의 안족을 쓰러뜨리자 완전히 새로운 소리가 나왔다. 밀가루를 바닥에 뿌린 무대에서 전통적 운지법을 해체하는 것도 모자라 별도의 음향까지 이용한 무대, '소리 놀이'는 일반에게 충격이었다. 국악 듀엣이라는 형식이 흔치 않은 것이기도 했다. "이게 통할까, 우리가 바른 길로 가고 있는 걸까 하는 회의가 없지 않았는데, 무모한 용기 덕에 해소된 거죠." 이들은 당당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는 스승 원일을 만나게 해준 데다. 원 교수는 " '숨'은 여전히 발전중인 미완의 팀"이라며 "자신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소리를 얻는다는 동양적 창조론을 이상적으로, 현대적으로 복원한다"고 평했다. 그는 "도전의 끝까지, 무소의 뿔처럼 가라"고 당부했다.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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