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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날

입력
2013.02.2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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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正月)의 반 이상이 훌쩍 지났다. 세월 가는 속도가 나이에 비례한다지만, 워낙 짧아진 설 명절도 이유일 듯하다. 어릴 적 농촌에서는 설 쇠는 데 보름은 족히 걸렸다. 그만큼 정월이 더디게 갔다. 설날에는 하루 종일 바삐 움직여도 마을 안 세배를 마치는 게 고작이고, 이웃 마을 세배까지 마치려면 며칠이 걸렸다. 버스를 타고 가야 할 친척집 세배는 설 지나고 일주일, 보름이 예사였다. 농한기라 바삐 서둘 일이 없었고, 교통편도 마땅치 않았다.

■ 설 쇠기만 길었던 게 아니다. 설날 이후의 온갖 날에도 저마다의 전래 풍습이 행해졌다. 도회지 생활이 길어지면서 거의 다 잊었지만 토끼날과 귀신날의 기억은 남았다. 토끼날은 설날 뒤에 일진(日辰)의 지지(地支)에 묘(卯)자가 처음 들어간 날로 올해는 을묘(乙卯)일인 18일이었다. 이날은 여자가 대문을 열면 불길하다고 미리 문을 열어두고, 부뚜막의 가마솥 안에 맛있는 음식을 넣어 두어 동네 사내아이들까지 부엌문과 솥뚜껑을 먼저 열도록 했다.

■ 귀신날은 정월 대보름 다음날이다. 귀신을 물리치거나 그 피해를 덜어 줄 액막이 방법이 동네마다 달랐다. 아이들에게는 밤에 신발 감추는 날로 기억됐다. 밤에 귀신이 돌아 다니다가 댓돌에 놓인 신발을 신어보고 발에 맞아 신고 가버리면 그 신발의 주인에게 횡액이 미친다고 했다. 어른들은 신발을 뒤집어 놓기만 해도 괜찮다는 느긋한 태도였지만, 아이들은 검정 고무신을 밤새 머리맡에 두고도 잠을 설쳐야 했다. 아이들에게 물건의 소중함을 각인시키려 했던 것일까.

■ 귀신날에 일을 하면 병이 든다고, 겨울철 하루도 거르지 않았던 나무하기도 쉬었다. 머슴들이 대보름으로 끝난 ‘설 휴가’를 하루 연장하려고 만든 날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대보름날 밤을 새다시피 불 깡통을 돌리며 불을 놓고, 이웃 마을과 돌싸움에 나서고, 뒤풀이 술판까지 벌였으니 이튿날 몸이 무거울 만했다. 그 귀신날이 어제였으니, 오늘부터는 일을 게을리 할 핑계가 없다. 기한을 넘기고도 마냥 일을 미루고 있는 ‘국민의 머슴’만 빼고.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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