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전 소행성 2012DA14가 지구 상공을 스쳐간 날, 책꽂이에서 를 꺼냈다. 어린왕자의 별 소행성 B612. 그 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오래 전 내가 두고두고 읽던 장면은 뱀과 어린왕자의 만남, 길들임에 대한 여우의 이야기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페이지를 곱씹고 있다. 어린왕자는 B612를 떠나 지구에 닿기 전까지 작고 외로운 별 여섯 개를 거친다. 그 중 한 곳에는 죽어라 셈만 하는 사업가가 살고 있다. 셈하는 게 뭔가 하면,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들이다. 딱히 무슨 쓸모가 있는 것도 아니건만 그냥 센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별을 세고 종이 위에 별의 개수를 쓰는 것으로, 그는 자신이 센 별들을 소유하게 되었다고 믿는다. 그저 세는 것만으로도 소유했다고 믿는 바보. 이 에피소드는 분명 그 자체로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돈 같은 것에 정신이 팔린 현대인에 대한 우화일 것이다. 하지만 헛것에 미쳐있는 이 바보가 오늘은 재미난 몽상가로 보이니 웬일일까. 쓸모 없는 것에 통째로 바쳐지는 삶. 그 쓸모 없는 것이 별이나 구름 같은 것이라면, 그런 삶은 나름 경탄할 만한 데가 있다. 어린왕자는 이 ‘이상한 어른’의 세계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이렇게 중얼거린다. “그것 참 시적이네.” 그런 것도 같다. 멀리 있는 것에 대한 마음이니까. 지구에서 다시 멀어져 가고 있는 소행성 2012DA14처럼. 우주 어딘가를 떠돌 어린왕자의 별 B612처럼.
신해욱 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