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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체트 끌어내린 국민투표 뒤엔 미국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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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체트 끌어내린 국민투표 뒤엔 미국 있었다

입력
2013.02.24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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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간으로 25일 오전 열리는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른 칠레 영화의 제목은 '반대(NO)'다. 1988년 악명 높은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철권 통치를 17년 만에 종식시킨 칠레 국민투표를 주제로 한 이 영화는 당시 '피노체트 정권 8년 연장에 동의하느냐'를 묻는 투표에서 '찬성'이 아닌 '반대' 표를 끌어내기 위한 칠레 민주화 세력의 투쟁을 담고 있다.

때마침 당시 역사적 국민투표의 이면을 보여주는 미국의 외교문서가 24일 공개됐다. 최근 기밀 해제된 미국 중앙정보국(CIA) 등의 문서에 따르면 피노체트는 국민투표에 발작을 일으킬 정도의 반응을 보였으며 투표 결과를 뒤엎고 군사력으로 진압해 집권을 연장하려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1981년 3월 발효된 새 헌법에 따라 피노체트는 1988년 어쩔 수 없이 집권 연장 찬반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도록 돼 있었다. 투표 결과는 유권자의 55%가 집권연장 '반대'였고 43%가 '찬성'이었다. 당시 투표를 하려면 유권자가 직접 등록을 해야 했는데 정권에 대한 두려움을 무릅쓰고 칠레 국민 750만명 이상이 등록을 한 결과였다.

피노체트는 투표 전날 "무슨 일이 있어도 물러나지 않겠다" "권좌를 유지하기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고 참모들에게 말했으며 투표 결과가 나온 직후 군 사령관들을 새벽 1시에 소집, 칠레 수도를 점령할 군사력 발동을 명령했다. 그러나 최측근 사령관조차 명령을 거부했고 이듬해 자유선거가 치러져 피노체트가 1990년 물러나면서 마침내 칠레의 민주화가 실현됐다.

이번 외교문서에서 주목할 점은 미국의 역할이다. 칠레는 1970년 세계 역사상 최초로 민주선거를 통해 사회주의 정당이 집권한 나라였고 미국은 1973년 피노체트의 쿠데타를 지원해 사회주의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을 사망케 하고 칠레를 암흑의 역사로 밀어 넣었다. 거의 13만명이 체포되고 3,000명 이상이 살해됐으며 약 2만8,000명이 고문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미국은 1988년 국민투표에서는 반 피노체트 진영을 지원했던 것으로 외교문서에서 나타났다. 주 칠레 미국 대사 해리 반스는 'NO 캠페인'을 하는 칠레 조직을 적극 지원했으며 그 때문에 피노체트 지지 진영에서 '더러운 해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미국측 정치 미디어 전략가들이 2년간 최소 여섯 차례 이상 칠레를 방문해 캠페인 전략을 조언했다.

그러나 영화 '반대'에서는 "미국은 쿠데타를 지원했고 피노체트를 언제나 지지한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실제 상황을 알기 어려워서이기도 했겠지만 미국에 대한 칠레인의 분노가 쉽게 사그라질 성질이 아님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피노체트는 인권탄압과 부정축재 등의 혐의로 기소됐으나 가택연금 상태에서 2006년 91세로 사망할 때까지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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