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18대 대통령이 오늘 취임한다.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의 취임에서 한국사회의 발전과 변화를 거듭 감지한다. 첫 2세 대통령으로서의 의미도 이런 인식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시대마다 조금씩 달랐지만 국민의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기여는 부인된 바 없다. 그 딸인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또한 1987년 민주화 이후의 사회발전으로 민주주의와 인권 침해에 대한 우려가 잦아든 대신 국민 삶의 안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진 결과다. 그가 대선 공약으로, 또 국정 비전으로 내건 '국민 행복'을 뒤집으면 국민의 불행을 막겠다는 다짐이며, 그 출발점이 삶의 기본 조건 내실화와 다름 아니라는 분명한 자각이다. 오늘 취임하는 박 대통령이 민생에 최우선 가치를 두겠다는 자각과 다짐에 공감하며, 앞으로 5년 동안 국민 삶을 안정된 기반 위에 올릴 수 있길 기대한다.
실천적 지혜로 성장과 고용, 복지 병행해야
돌이켜보면 5년 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취임 당시 국민이 품었던 기대도 지금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국민 다수가 삶의 조건이 나아지기를 바랐고, 당장의 성과는 아니더라도 그런 방향으로의 분명한 변화라도 움트길 간망했다. 오늘 박 대통령의 취임을 맞아 국민은 다시 그런 바람을 가슴에 담는다.
이런 국민의 바람과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국정 핵심과제로 새 대통령은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를 으뜸으로 내걸었다. 국가 전체의 먹고 사는 문제가 달린 미래 산업을 적극 발굴하되, '고용 없는 성장'의 한계를 드러낸 기존 첨단산업과 달리 일자리와 부가가치를 함께 늘리는 신 산업의 육성으로 경제발전을 이루자는 것이다. '맞춤형 고용ㆍ복지'를 두 번째 과제로 삼았듯, 성장이 분배나 복지와 따로일 수 없고, 양질의 일자리가 분배와 복지의 궁극적 기반임을 제대로 인식한 결과라고 본다. 다만 사회 일각의 우려처럼 이런 창조경제와 맞춤형 복지의 강조가 자칫 경제민주화 인식의 후퇴로 변질해서는 안 된다. 지난 5년 동안 감세 정책을 비롯해 기업의 성장잠재력을 자극하려는 지원의 결과 성장의 과실이 대기업에 집중되고, 국민 전반의 삶은 제자리 걸음을 하거나 뒷걸음질쳤다. 복지정책만으로 대처하기에는 부담이 너무 크다는 점에서 사회적 공감대가 이뤄진 동반성장, 균형성장의 단추를 하나하나 끼워나가야 한다. 다만 그런 인식이 기업의 창의성과 투자 욕구를 억누르지 않도록 '대기업 때리기' 말 잔치 대신에 유연하고 실질적인 동반성장의 제도화에 나설 수 있어야 한다.
새 대통령이 맞은 현실은 엄혹하고, 벌써부터 고개를 내민 걸림돌도 숱하다. 당장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지만 2008년 리먼 쇼크에서 비롯한 세계경제의 구조적 위기의 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았다. 해외시장의 안정적 확대에 기대어 살아야 하는 처지에 비추어 이만저만한 불안요인이 아니다. 아울러 부동산을 비롯한 자산가치의 하락과 가계부채의 증가, 내수 둔화 등 국내 경기동향도 불투명해 정부와 기업의 의욕을 갉아먹고 있다. 이런 위기 요인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그 사이의 비좁은 틈을 헤치고 살 길을 찾아낼 구체적 현실의 지혜가 절실하다.
정치 난제는 소통과 포용력으로 풀어야
더욱 난해한 것은 국내외의 정치 동향이다. 북한의 핵 실험으로 조성된 동북아 정세의 긴장은 짧은 시일 안에 풀리기 어렵고, 국민 감정을 자극하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등 외교적 난제도 쌓여있다. 무엇보다 야당의 협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조직법 개정을 둘러싼 여야 갈등은 부처의 기능 조정을 둘러싼 기술적 논쟁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이런 국내외의 정치과제는 도덕적 정당성과 정치적 자신감에 근거한 포용력을 현실적 지혜에 덧붙이지 않고는 풀기 어렵다.
통 큰 정치의 필요성은 국민행복과 함께 새 대통령의 의욕이 결집된 '대통합'의 실현을 위해서도 불가결하다. 정치적 자산이던 원칙과 신뢰의 이면에 유연성과 소통의 부족이 숨어있을 것이란 우려는 인수위 활동과 새 정부 총리ㆍ장관 인선 과정에서 더욱 커졌다. 불완전 출범하는 박근혜 정부의 모습이 안쓰럽지만, 그럴수록 대화와 대통령의 결단으로 교착상태를 풀어 이런 우려가 기우에 지나지 않음을 확인시켜야 한다. 새 대통령의 첫 과제이자 국민 신뢰의 시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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