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하자 시진핑(習近平) 중국공산당 총서기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인 드미트리 메젠체프 상하이협력기구(SCO) 신임 사무총장을 접견했다. 시 총서기는 다음달엔 국가주석에 오른 뒤 처음으로 출국해 러시아를 방문한다.
아베 총리는 2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회담에서 북한 핵실험과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 문제가 논의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중국은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아베 총리가 방미 직전 인터뷰에서 "중국공산당이 시장경제 도입으로 상실한 정당성을 채우기 위해 반일 감정을 골자로 한 애국심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고 주장한 사실이 전해지면서 중국은 더욱 민감하게 대응했다. 훙레이(洪磊) 외교부 대변인은 "한 국가 지도자가 이웃 나라를 뻔뻔하게 공격하고 역내 국가 간 적대감을 부추기는 것은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라며 "일본은 잘못을 시인하고 관련 발언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민일보는 22일 "아베 총리의 발언은 죄 지은 사람이 고소장을 먼저 낸 것처럼 본말이 전도됐다"며 "중일 관계뿐 아니라 동북아의 평화를 파괴하려는 행위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때문에 시 총서기가 22일 베이징(北京)시 인민대회당에서 메젠체프 SCO 사무총장을 만난 것이 예사롭지 않다는 게 외교가의 시각이다. SCO는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도 회원으로 참가하고 있지만 사실상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 주도로 운영되는 기구이다. 시 총서기는 이날 "국제 정세에 심각하고 복잡한 변화가 이어지고 있다"며 "이럴 때 일수록 SCO를 강화해 위협과 도전에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 핵실험에 대한 양측의 입장도 엇갈린다. 미국과 일본이 3차 핵실험을 한 북한에 강경 제재가 필요하다는 입장인 반면 중국, 러시아는 과도한 제재에 반대하고 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은 22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회담을 갖고 "북한의 핵실험은 비난받아 마땅하고 유엔 안보리의 합당한 대응이 불가피하다"면서도 "현 상황을 한반도 지역의 군비경쟁이나 (북한에 대한) 외부 군사개입을 위한 명분으로 이용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강력한 대북 제재를 원하는 한미일의 입장과는 분명히 선을 그은 것이다.
이처럼 중러가 미일에 맞서는 구도가 형성되는 것은 미국의 아시아 복귀 전략이 중러의 이해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중국은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아시아로 돌아온 것으로 보고 있으며 극동 개발에 승부를 건 러시아도 미국의 행보가 거슬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은 시 총서기가 취임 후 첫 방문국으로 러시아를 택한 것을 미국의 아시아 복귀를 견제하려는 행보로 평가했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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