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의 심야 온라인게임 규제책인 셧다운제를 둘러싼 학부모ㆍ시민단체와 업계 간의 오랜 힘겨루기가 결국 업계의 승리로 기우는 듯 하다. 셧다운제를 모바일에까지 확대하겠다며 나섰던 여성가족부가 무능과 무소신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셧다운제 강화 방침을 포기한 뒤, 이제 업계는 게임규제 자체를 아예 없애기 위해 전열(戰列)을 가다듬고 있다. 이런 기세라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셧다운제 강화 공약마저 흔적도 없이 폐기될지 모른다.
온라인게임, 또는 청소년들의 인터넷과 모바일 과용 대책이 절실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로선 새 여성부 장관 인선부터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다. 조윤선 내정자는 국회 문방위원으로서 셧다운제 입법부터 반대한 인물이다.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내정자 역시 과거 문화산업국장을 지내며 게임산업에 공을 들였다. 여기에 지난달 e스포츠협회장을 맡아 셧다운제 무력화에 앞장 선 민주당 전병헌 의원에 이어, 업계는 엊그제 게임산업협회장에 새누리당 중진인 남경필 의원까지 끌어다 앉히는 데 성공했다.
업계로선 만만세가 됐다. 먹고 살기 바쁜 학부모들이야 아무리 떠들어 봐야 바람 찬 길거리에서 이리저리 몰려 다니다가 제풀에 스러져 버릴 것이다. 시민단체들도 '게임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자'는 막연한 이슈에 재미를 느낄 리 없다. 막강한 자금력과 끈질긴 로비력으로 무장한 업계는 이미 승리를 확신하는 것 같다. 그래서 새 정부가 인터넷 규제 개선을 위한 '범부처 협의회'를 운영키로 하자, 벌써부터 셧다운제를 '실효성 없이 산업을 위축시키는 대표적 악법'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업계 등의 셧다운제 반대 논리는 사실 빈약하다. 그들은 실효성이 없다고 한다. 셧다운제 실시에 따른 청소년들의 심야시간 게임률 하락폭이 0.3%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셧다운제 이전 심야시간 게임률이 0.5%였던 사실을 외면한 왜곡이다. 0.5%가 0.2%로 낮아졌다면 청소년들의 심야시간 게임은 반 이하로 줄어든 게 맞기 때문이다. 한 발 양보해 직접효과는 크지 않을지 몰라도, 금지규칙의 광범위한 예방효과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업계가 왜 실효성도 없는 규제를 게임산업 죽이는 악법이라며 사활을 걸겠는가.
선진국엔 없는 규제라느니, 자동차 산업 못지 않은 연 10조원 시장이라느니 하는 얘기도 사회 여건과 산업 연관효과 등의 차이를 따져 보면 납득이 어렵긴 마찬가지다. 이런 빈약한 논리를 보강하기 위한 셧다운제 반대론자들의 주장을 대표한 게 전병헌 의원이다. 그는 "후진적인 규제를 넘어 청소년들이 진정 원하는 행복한 정책이 뭔지 사회적으로 논의해보자"고 제안했다. 요컨대 보다 생산적인 청소년 게임 대책을 강구하자는 얘기다.
전 의원 말대로 더 낳은 대책이 있다면 굳이 규제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 더욱이 그것이 청소년의 진정한 행복을 위하는 것 임에랴. 그래서 전 의원과 남경필 의원, 조윤선ㆍ유진룡 내정자에게 제안하고 싶다.
앞으로 네 사람은 정부와 국회 차원에서 게임산업이 청소년의 건강한 심신 발달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틀을 찾아주기 바란다. 학교체육 및 방과 후 스포츠 활동을 지원하는 방식이면 좋겠다. 각급 학교에 체육관을 짓고, 스포츠 강사를 배치한다는 계획까지 나왔다. 하지만 예산 부족으로 체육관 부지는 물론 운동장조차 없는 도심 학교가 부지기수다.
청소년 누구나 쉽게 축구나 테니스를 배우고, 농구와 수영을 즐기며 땀을 흘릴 수 있다면 게임에 대한 걱정도 크게 덜 수 있을 것이다. 게임 진흥책에 맞춰 담배나 술처럼 업계 수익에서 기금을 조성해 청소년 스포츠 지원 등에 쓰는 식이 어떨까 한다. '청소년의 행복'을 거론하는 마음이 진심이라면, 전국 곳곳에 '리그 오브 레전드 청소년스포츠센터'나 '리니지 학생 테니스클럽' 같은 걸 많이 세우길 기대한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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