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 4년(1728년) 궁중의 기록인 엔 "장교에게는 대구어, 군졸에게는 명태를 주었는데, 이는 오랫동안 준수하여 오던 품수이므로"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 시절 한양에선 대구는 왕이나 고급관료, 명태는 하급관리나 백성이 먹던 음식이었던가 보다. 그런 군둥내 나는 얘기서부터 경남 거제도의 버스터미널 뒤편 '노래바' 가득한 유흥가에서 밤새 마시고 난 아침, 어항에서 바로 떠온 시원한 대구탕 한 그릇으로 속을 푸는 얘기까지, 팔도강산 먹거리와 먹거리에 얽힌 사람들의 얘기가 담긴 책이다.
방송 프로듀서, 출판사 대표, 애니메이션 제작자 등 다양한 일을 섭렵한 지은이 박정배씨는 현재 여행과 음식에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 이 책은 지난 2년 그의 식행(食行), 혹은 미각 모험의 기록이다. "음식 문화란 과거를 기반으로 미래를 향해 변화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복합체"라는 것이, 정리하자면 그의 음식론. 이 강산에 펼쳐진 그 복합체의 윤곽을 그려보고자 지은이는 이태 동안 전국을 돌았다. 봄이면 문어를 따라서, 여름이면 냉면에 빠져, 가을이면 전어 냄새를 맡으며, 겨울에는 꼬막과 굴을 좇아 다녔다.
1권 '바다의 귀한 손님들이 찾아온다'는 바다에 숨줄을 댄 어민들과 그들이 바다에서 건진 비린것들로 차려진 밥상이다. 첫 번째 장은 문어 이야기. 선비들로부터 유독 사랑 받아 글월 문(文)자를 이름으로 얻은 이 해물이 유교문화가 강했던 안동과 영주 등 경북 깊숙한 산자락에서 제사상에 오르는 얘기가 흥미롭다. 이어 홍어, 장어, 전어, 과메기, 꼬막, 도루묵 등등이 이어진다. 2권 '국수는 행복의 음식이다'엔 서민의 삶과 떼 놓고는 말할 수 없는 이 땅의 면요리에 관한 사연들이 곱빼기로 담겨 있다.
지은이는 모두 다섯 권으로 이 책을 기획했다고 밝히고 있다. 3권은 육류, 4권은 한국 음식의 원형, 5권은 술과 음료의 얘기다. 기대된다. 전국을 솔찬케 싸돌아다니는 내 차 뒷자리 포켓에, 아마도 이 책들이 꽂혀있게 될 것 같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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