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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이름 지어 보며 세상 모든 단어를 다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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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이름 지어 보며 세상 모든 단어를 다시 배웠다

입력
2013.02.22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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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경주 아비되기 40주불안과 황홀한 감정을 일기로 '소울' 태어나며 대단원의 막

'당신은 지금 두 개의 심장을 갖고 있습니다. …당신, 정말이지 나는 인간은 모두 태내에 있는 동안 두 개의 심장으로 지내는 시기가 있었다는 사실에 경이를 품고 있습니다.'(19~21쪽)

어미의 자궁에 기거하지 않고는 태어날 수 없으므로, 최초에 인간은 복수(複數)의 심장을 지닌다. 그 두 개의 심장이 주고 받는 박동이 인간 최초의 언어이며, 어쩌면 모성이란 다시 한번 두 개의 심장으로 한 시절을 살 수 있는 어느 특별한 종의 기질을 설명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시인 김경주(37)씨가 아비가 되기까지 40주간의 불안과 황홀을 기록한 새 책 를 펴냈다. 시인으로 극작가로 연출자로 문화기획자로 전방위적 열정을 뿜어내면서도 아비만은 되지 않겠다던 한 사내가 생명의 생성과 탄생이라는 우주적 숭고에 굴복하고 마는 치열하고도 농밀한 내적 여정의 기록이다. '모두가 겪었다고 하더라도 나에게 와서 홀로가 된, 나 외에 아무도 참여해본 적 없는 감정'(221쪽)들을 놓치지 않은 것은 그가 예민하고 섬세한 감성의 시인인 덕분이겠지만, 방랑자의 풍모가 위장하는 남 모를 애처심이 없었다면 그것은 굳이 책이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이가 만들어져 세상에 나오기까지 시인이 겪은 40주는 기승전결의 서사구조마저 갖췄다. 양귀비 씨앗만한 심장을 가진 6주차의 아기를 향해 그는 '아가야, 너는 지금껏 한 번도 나와 내 언어에 도착해본 적이 없는 인기척이란다'(17쪽)라고 속삭인다. 산모라는 단어에서는 당신의 살냄새가, 아기의 살냄새가 난다고(23쪽), 아이의 이름을 지어보며 세상의 모든 단어들을 다시 배워가는 느낌이라고(26쪽) 행복한 고백을 쏟아낸다.

하지만 불안은 이내 찾아온다. '오류로 범벅인 내 삶에 너라는 질서가 들어와 조금 정돈된 듯했지만 또다시 찾아오는 이 불안감과 황량함은 어디에 근원이 있는 것일까? 배후를 모르는 스산한 결들이 밤마다 나의 문장에 찾아오고 있다. 우리는 너로 인해 충분히 외롭다. 이 서글픈 역능을 아는지 엄마는 밤에 내 옆에서 돌아눕기 시작했다.'(77쪽)

갈등도 있다. 모든 것이 처음인 서툰 아비는 아내가 느닷없이 길을 가다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릴 때도, 홀로 지내는 늦은 밤에 우울해 할 때도 그저 고요 속으로 도망치기만 한다. 벚꽃 핀 봄밤 환한 외로움으로 눈동자에 물이 가득 찬 아내가 모로 돌아 잠이 들면 가만히 등을 안고 자는 일이 그가 행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랑. 하지만 아이의 태동은 불안을 진압한다. 말발굽소리 같은 심음과 태동은 감격한 시인을 '내 손에 느껴지는 아기의 숨소리를 내 문장으로 조심히 안아 들고 가고 싶은 밤'으로 홀연히 데려간다.(111쪽)

대단원의 결말은 출산이다. 혈흔으로 출산 과정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이슬이 비친다'는 표현은 시인이 곧 듣게 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국어 문장 하나'이며(183쪽), 배냇저고리 배내잠 배내털 같은 말들은 그에게 '참 따뜻한 멀미를 안겨주는 말'이다(205쪽). 만삭이라는 단어는 '당신의 배에 달이 가득 차 있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키고(214쪽), 분만실에서의 진통은 아이와 아내, 그가 '셋이 나누어 하는 숨쉬기'이다. 아이는 엄마의 벌린 입으로 숨냄새를 뱉어내고, 엄마는 아이가 숨을 쉴 수 있도록 커다랗게 들숨을 마시며, 아빠는 엄마의 손을 잡아주며 함께 숨을 고른다. 40주간의 서사시가 일단락하는 순간이다.

2011년 가을 태어난 아이의 이름은 소울이라고 한다. 영어의 'Soul'이기도, 웃음(笑)과 울음(鬱)을 절반씩 나누어 가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추천사에 '이것은 몹시 아름다운 책이라고. 어쩌면 김경주가 쓴 모든 글 중에서 가장 그렇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썼다. 아비(혹은 어미)가 되었거나, 될 예정이거나, 혹은 되지 않으려는 이에게도 이것은 읽을 만한 책이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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