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100억대의 재산을 연세대에 기부한 김순전 할머니의 서거 소식이 몇몇 일간 신문에 소개 됐다. 황해도 출신의 김 할머니는 한국전쟁기간 중 남편과 이불하나 달랑 들고 남으로 내려와 60여년을 어렵사리 모은 거액의 재산을 대학에 기부한 것이다. 자신이 배우지 못한 한을 가난한 학생들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한 깊은 뜻이 담겨있는 기부금이라 한다. 우리사회에 할머니들의 장학금 기부는 비단 김 할머니뿐만이 아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황금찬 할머니는 평소 폐지를 모으고, 연료비를 아끼고, 끼니를 거르며 모은 돈 1억 원을 서울 강서구에 장학금으로 기탁했고, 역시 같은 위안부로 기구한 삶을 살아온 경남 통영의 95세 김복득 할머니는 한푼 두푼 평생을 모은 2,000만 원을 통영여고에 장학금으로 내 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지구상 어느나라, 어느사회에서 이토록 눈물겹고 아름다운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시장바닥에 쭈구리고 앉아 평생을 빈대떡 장사로 모은 거액의 돈을 대학에 쾌척하는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이제 그리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인터넷에서 '할머니 장학금'을 검색하면 줄을 이어 쏟아지는 다양한 사연들이 우리를 숙연케 한다.
우리사회에는 할머니들의 기부장학금 못지않게 다양한 장학재단들이 존재한다. 전국 16개 시·도교육청에 등록된 장학재단의 수만도 무려 2,700여개가 넘는다. 그런데 문제는 비싼 대학등록금에 비해 상당수의 장학재단들의 재무구조가 그리 좋질 못하다는 점이다. 법인등록요건에 해당하는 기본자산 5억∼10억 정도로 이자 수익금에 의존해 저금리 시대의 장학사업을 하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영세한 장학재단들이 장학사업을 축소하거나 중단해야 할 전망이다. 하물며 개인기부를 통해 이뤄진 할머니들의 장학금이 얼마나 버텨낼 수 있겠는가. 정작 장학기금의 고갈보다 더한 안타까움은 할머니들의 애환서린 감동적 이야기 마저 사라지고 말 것이란 점이다.
이와 같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장학금에 대한 개념과 운영방식의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우선 장학금이 공부 잘하는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보상금 형태가 되기 보다는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학생들에게 학업을 계속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징검다리 기능이 돼야 한다. 그리고 전달되는 장학금이 퍼주기식 방식보다는 훗날 되돌림 되어 또 다른 누군가의 징검다리가 되는 선순환구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또 다른 기대는 장학금의 전달이 기부자의 유지를 담아 교육적 메시지와 함께 전달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상당수의 장학금들이 학교당국으로 직접 보내 지거나 학생 개인 통장으로 입금되는 지극히 사무적인 장학행정이 이뤄져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에서는 우리나라처럼 성적에 대한 포상금 형태의 장학금은 매우 드물다. 학교로부터 받게 되는 대다수의 장학금들은 조교업무를 하거나 학내에서 일정한 시간 일을 하고 받게 되는 급여성장학금이 주류를 이룬다. 그리고 정부로부터 받는 학비지원금 형태의 장학금은 공부하는 동안 빌려 쓰는 돈이고, 학교를 졸업해 취업을 하게 되면 분할해서 원금과 이자를 상환해야 하는 등록 및 생활보조금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도 장학금을 기부한 할머니들의 아름다운 이야기에 화답을 하려는 듯 또 다른 감동의 이야기들이 들려 온다. 새학기 장학생에 선발된 일부 학생들이 자신보다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을 위해 장학금을 양보하고, 학창시절 받았던 장학금을 현재의 화폐가치로 환산해 되돌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학창시절 받았던 장학금을 '평생을 두고 갚아도 좀처럼 갚아지지 않는 마음의 빚'이란 생각을 가지고 살아온 그들이 있어 우리 사회가 살만한 곳이란 생각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물을 마실 때 물의 근원을 생각하는 마음을 일컬어 음수사원(陰水思源)이라 했던가. 한 평생 배우지 못한 한을 다음세대 젊은이들에게 장학금 기부로 승화시킨 할머니들의 숭고한 뜻이 이 봄 활짝 피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오성삼 인천 송도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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