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보라 가자"면 춤부터 덩실덩실 췄다는 극작ㆍ연출가 오태석씨에게 굿은 살아있는 연희 양식이다. 한국 연극의 원형은 굿에 있다며 '오구_죽음의 형식'등의 작품에서 굿판 자체를 무대화한 이윤택씨에게 굿은 연극 자체다. 지난 14~20일 이레 꼬박 낮밤으로 부산시 기장군 대변마을을 달궜던 제 28회 동해안별신굿 공개 행사가 그러했다.
동해안별신굿은 매년 음력 정월에 하는 풍어제다. 198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 82-1호로 지정된 이래 기장군에서는 매년 6개 마을이 돌아가며 하고 있다. 마을 대동굿이라 원래 규모가 큰 데다, 다른 지역보다 하루 더 펼치는 까닭에 굿거리 수도 7개가 더 많아 37개나 된다. 기장 일대에서 마을 수호신들을 모신 여덟 곳의 제당을 돌며 신을 청해 오는 당맞이굿(14일), 조상신에게 자손들의 평안을 기원하는 가망굿(15일), 천연두신을 모셔다가 질병과 재액을 막아달라고 비는 천왕굿(16일), 아이의 수명과 재복을 관장하는 세존을 모시는 세존굿(17일) 등 저마다 족히 반나절은 걸리는 굿거리가 빠짐없이 벌어졌다.
20일 굿판은 김동언 만신(59)이 주관했다. 그는 동해안별신굿 최고의 명인인 고 김석출씨의 셋째딸이다. 굿청에는 선주 등 유지의 이름은 물론 각종 업소의 상호나 '나무유명 지장보살' 등 주민들의 희원을 담은 연등 200여개가 빼곡히 걸렸다. 지역과 중앙에서 달려온 캠코더들의 시선은 김씨를 촬영하느라 여념이 없다.
"부도 나지 말고 하재(화재)도 나지 말고, 봉급도 마이(많이) 올라가고…", "우옛든동(어찌 됐건 간에) 잔술 한 잔만이라도 정성으로 받으시고…."악사들의 반주를 타고 4ㆍ4조로 엮어 내는 축원에 흥이 넘친다. 그 기운을 타고 소지(燒紙)가 높이 올라간다. 해조류협회장 등 지역 유지들도 앞에 나와 한마디씩 거든다.
만신의 앞섶에 1만원, 5만원권 지폐가 수시로 꽂힌다. "내가 돈 더 있어가(돈이 더 있어서) 팔자 고치겠나. 오소 오소." 구경꾼들을 상 앞으로 불러 모으더니, 약속이나 한 듯 갑자기 모두 막춤이다. 뽕짝 메들리에 개다리춤까지, 영락없는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내가 뽕짝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수호신도 기분이 나면 가만히 계시지는 않을 낍니더."
동해안별신굿 전수조교인 그는 무형문화재 보유자 지정을 눈 앞에 두고 있다. 5대째 가업을 잇는 것이다."굿을 하는 것은 내 본마음이 아니고 신령의 힘이라예. 하는 동안은 아무 힘도 안 듭니더." 다음날 한숨 돌린 그가 말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기장에 제자 5명을 두고 동해안별신굿전수관을 운영 중인 그는 "동해안별신굿이 잘 되려면 전수 기회를 넓히고 전승 지원비가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에게는 제자들이 가장 큰 희망이다. "조카 등 후대가 잇고 있는데, 학습꾼이 돼 열심히 잘 해줬으면 해요." 안성의 중앙대에서 판소리를 가르치는 등 기회 닿는 대로 소통을 멈추지 않는 그는 "요청만 오면 굿판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부산=장병욱기자 aj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