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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공간의 공연예술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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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공간의 공연예술 천국

입력
2013.02.21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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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은 손 안의 컴퓨터다. 이 신통방통한 기기를 인터넷을 검색하고 이메일을 확인하는 정도로 쓰다가 페이스북과 트윗을 시작한 게 잘못이었다. 그 재미에 빠져서 작은 액정화면을 눈이 아프게 들여다보면서 정신을 팔다가 내려야 할 곳을 지나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러다 망하지 싶을 만큼 거의 중독 상태를 자각할 무렵,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미국과 유럽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예술가와 예술단체의 공연을 출퇴근 길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으로 즐기는 중이다.

지금 내 아이폰에는 시카고심포니ㆍ베를린필ㆍ런던필 등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 미국의 공영 클래식FM인 WQXR과 KUSC, 클래식 콘서트ㆍ오페라ㆍ발레 공연 실황을 내보내는 유럽의 인터넷 채널 메디치TV 등이 들어와 있다. 앱스토어에서 앱(모두 무료다)을 내려 받아 깔기만 하면 최신 공연을 언제 어디서나 최고의 화질과 음질로 실컷 보고 들을 수 있다. 덕분에 세계 여러 도시의 오페라극장과 콘서트홀을 신나게 돌아다니고 있다. 스페인 마드리드,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미국의 시카고와 뉴욕, 로스앤젤레스. 최근 1주일 사이 스마트폰으로 이 도시들을 방문해서 공연을 감상했다. 세상 참 좋아졌다.

더 반갑게도 이 서비스들은 대부분 무료다. 티켓을 사야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있다. 베를린필 연주를 실시간 생중계하는 베를린필 디지털 콘서트홀의 입장권은 공연당 2.99유로(4,300원)나 3.99유로(5,700원)다. 6대의 HD카메라와 최고의 오디오 장비를 동원해서 최상의 화질과 음질로 제공하는 실황을 볼 수 있다. 실제 콘서트홀 객석에 앉아서 보는 감흥에는 못 미친다 해도 베를린필 내한공연 티켓이 수십 만원인 데 비하면 엄청 싸다.

그래도 공짜가 더 좋은 내가 가장 즐겨 보는 것은 메디치TV다. 하나같이 최고의 공연인 데다 음질도 화질도 끝내준다. 공연 직후 바로 인터넷에 올려 처음 두세 달은 무료로 내보낸 뒤 유료인 주문형 비디오 서비스로 전환한다. 현재 무료 방송 중인 오페라와 콘서트 11개 중 현존 최고의 작곡가 필립 글래스의 신작 오페라 ‘완벽한 미국인’은 스페인 마드리드의 국립극장인 테아트로 레알에서 2월 6일 있었던 세계 초연 실황이다.

음악도라면 국제클래식음악상(ICMA)이 2011년 클래식음악 베스트 웹사이트로 선정한 클래시컬플래닛(www.classicalplanet.com)에 가 보길 권한다. 유럽의 신진 연주자들 콘서트 실황과 세계적인 대가들의 마스터클래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마스터클래스는 유료(하루 4유로, 월 16유로, 1년 96유로)인데 교수진이 굉장하다. 블라디미드 아슈케나지(오케스트라 지휘), 지기스발트 쿠이켄(바로크 바이올린), 안드라스 쉬프(피아노) 등 분야마다 길게 이어진 화려한 명단에 눈이 휘둥그레질 것이다.

스마트폰과 PC로, 무료로 또는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이 많은 좋은 콘텐츠를 보면서, 한국에도 무대예술 공연 실황을 내보내는 디지털 플랫폼이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예술은 공기나 물처럼 모두의 것이다. 누구나 예술을 누릴 권리가 있지만, 공연을 보고 싶어도 티켓 가격이 부담스럽거나 멀리 떨어져 있어서 못 보는 사람, 너무 낯설게 느껴져서 다가가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하고 운영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별도의 장비와 공간, 인력이 필요하고 수익을 내기 힘든 사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나 문화재단, 기업, 방송국 등이 힘을 합치면 불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 베를린필 디지털 콘서트홀은 독일 최대 은행인 도이체방크의 전폭적인 재정 지원으로, 메디치TV는 최대 스폰서인 명품 시계 회사 롤렉스 외에 프랑스 국립영화영상센터와 유럽연합의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클래시컬플래닛은 스페인 산업부가 지원하는 프로젝트로, 스페인을 대표하는 작곡가 이름을 딴 알베니스재단이 플랫폼을 개발해 왕립 레이나 소피아 음악학교가 운영하고 있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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