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아침부터 꾸벅꾸벅 졸던 A(3)양이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어머니는 아이를 업고 근처 병원 응급실로 무조건 뛰었다. 의사는 "로타바이러스로 인한 장염이 의심되고 현재 탈수 증상이 심한 상황"이라고 했다. 아이는 고사리손에 주삿바늘을 꼽고 꼬박 이틀을 병실에 누워있다가 퇴원했다. A양의 어머니는 "여름도 아닌데 무슨 바이러스 장염이냐"고 했지만 여름에 빈발하는 세균성 장염과 달리 바이러스성 장염은 지금이 한창 기승을 부릴 때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급성 설사질환을 유발하는 로타바이러스와 노로바이러스 감염자는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0월부터 급증해 이듬해 1, 2월 가장 많다가 3월 이후 급격히 줄어든다. 전문가들은 "바이러스가 덥고 습한 여름보다 춥고 건조한 겨울에 더 오래 살아남는데다 추우면 실내 활동이 많아 사람간 접촉이 잦아 잘 전염된다"고 말한다. 로타바이러스는 주로 5세 이하 영유아, 노로바이러스는 연령을 가리지 않고 장염을 유발한다.
전자현미경으로 보면 수레바퀴처럼 생겨 영어 'Wheel'에 해당하는 라틴어 로타(Rota)가 붙은 이 바이러스는 영유아 급성설사병의 가장 흔한 원인이다. 5세 이하 아이들의 95%가 적어도 한 번은 로타바이러스 장염에 걸릴 정도다. 초기에는 콧물, 기침, 열 등 가벼운 감기 증세를 보이다가 하루 정도 지나면서 구토와 설사 증상으로 이어진다.
로타바이러스는 소장의 융모세포를 파괴해 물과 영양소가 흡수되는 것을 막아 탈수를 유발한다. 어린 아이들의 경우 탈수가 심하면 장기 손상을 입거나 생명을 잃을 수도 있어 탈수를 막는 게 급선무다. 설사를 하는 아이가 6시간 넘도록 소변을 보지 않거나 입술과 혀가 마르는 증상을 보이면 병원에서 수액주사를 맞는 등 적극적인 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다.
탈수 증상을 막는다고 이온음료나 설탕이 들어간 음료수를 먹이는 것은 금물이다. 체내 삼투압을 높여 오히려 설사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또 토하는 증상만 없어지면 평소에 먹던 대로 섭취하는 게 좋다. 박재옥 순천향대 부천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굶으면 손상된 융모세포의 재생이 늦어진다"며 "모유나 분유, 이유식 등 평소대로 먹어야 더 빨리 낫는다"고 말했다.
로타바이러스 백신을 접종했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변종이 많은 바이러스여서 백신을 맞은 환자 중 20% 정도는 발병하며, 한 번 앓고 난 뒤 다시 감염되기도 한다. 바이러스가 환자의 토사물이나 대변을 통해 세면대, 변기, 출입문 손잡이 등에 묻어 있다가 다른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 장염을 유발하는 만큼 손을 잘 닦는 게 가장 좋은 예방법이다. 박 교수는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등 개학에 앞서 아이들에게 화장실 사용 후, 밥 먹기 전에 반드시 손을 비누로 닦으라고 교육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노로바이러스는 나이를 가리지 않고 장염을 유발하므로 성인이라고 안심해선 안 된다. 구토, 복통, 설사 증상과 함께 열이 나거나 근육통을 동반하기도 한다. 하루에도 수 차례 설사를 하는 통에 젊고 건강한 사람도 무력감에 빠지게 한다. 특히 장기 이식을 받았거나 암 수술을 받고 면역억제제를 투여 중이거나 간, 콩팥 등에 만성질환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어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게다가 아직 예방 백신도 없어 감염되지 않도록 손을 잘 닦는 게 최선이다.
1968년 미국 오하이오주 노워크(Norwalk)의 한 학교에서 집단 발병을 일으켜 노르워크 바이러스로 불리다가 2002년 유사 바이러스를 통칭해 노로바이러스라는 이름을 얻은 이 바이러스는 전염성이 매우 높다. 이창균 경희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바이러스성 장염을 앓고 난 환자들은 설사 증상이 멎어도 바이러스가 몸에 남아 있다"면서 "정상 변을 봤더라도 하루 정도는 다른 사람과 접촉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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