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금리가 한국은행을 비웃고 있다. 이른바 '현오석 효과' 얘기다. 17일 새 정부 경제부총리에 현오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이 내정되자 주요 국고채 금리는 18, 19일 연달아 0.03~0.05%포인트씩 하락했다. 비록 20일엔 주가 급등의 영향으로 반등했지만 지난주(14일) 한은의 기준금리 동결 결정에는 꿈쩍 않던 금리가 갑자기 떨어진 건 분명 인사 뉴스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최근 금리하락을 설명하는 시장의 논리는 이렇다. 현 원장 재직 시절 KDI 보고서가 수 차례 금리인하 필요성을 지적했고 이는 직간접적으로 현 원장의 의중이 담긴 것이니, 그가 경제수장이 되면 기준금리를 내릴 것이란 판단에 미리 움직였다는 얘기다.
물론 현실적으로 그럴 수 있다. 한은이 독립기관이라 하더라도 정부가 경기 부양에 나설 때, 계속 어깃장만 놓을 수 있겠는가. 김중수 총재가 취임 때부터 줄곧 강조하는 '정부와의 정책 공조'가 100%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지금 채권시장의 움직임에는 정작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한은의 존재가 철저히 배제돼 있다. 이건 심각한 문제다. 한은이 상대해야 할 시장이 중앙은행의 존재감은 아예 무시한 채 오로지 정부에만 관심을 둔다면 앞으로 한은의 어떤 정책이 효과를 거둘 수 있겠는가.
이는 한은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작년 말 성장전망을 대폭 하향할 때도, 올 들어 엔저현상이 수출을 위협할 때도 기준금리는 일반의 예상과 다르게 '동결'이었다. 김 총재는 지난주 금리결정 때도 "경기가 더 나빠지지는 않을 것" "환율과 금리는 별 관계가 없다"며 추가 인하 기대감마저 낮춰 놓았다. "거시정책은 패키지로 해야 효과가 있다"는 묘한 여지를 남긴 채 말이다. 그 결과, 시장은 한은의 금리판단 기준과는 별개로 다음달 인하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 정책에 협조도 하지만 정부가 너무 나간다 싶으면 브레이크를 걸고, 반대로 주저할 때 과감히 나서는 것은 중앙은행의 기본 책무이자 독립성의 요체다. 그리고 그 독립성의 기본은 묵직한 존재감일 것이다. 김 총재가 요즘 시장의 비아냥을 알고나 있을지 궁금하다.
김용식 경제부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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