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차명계좌 때문에 자살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조현오(57) 전 경찰청장이 20일 법원에서 징역 10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까지 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2단독 이성호 판사는 이날 사자(死者) 명예훼손 불구속 기소된 조 전 청장에게 이같이 선고하고 곧바로 구속 절차를 집행했다. 경찰 등을 중심으로 "형량이 높은 강력범죄로 기소된 것도 아니고, 정관계 고위 인사들에 대해 국가발전에 기여한 점 등을 고려했던 선례와도 어긋난다"는 볼멘소리가 나왔지만, 법원의 입장은 단호했다.
법원은 우선 조 전 청장이 고위공직자 위치에서 부적절한 발언을 해 피해 정도가 심각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현직 서울경찰청장 지위에서 공식적인 강의를 통해 공개된 발언은 누구도 쉽사리 허위사실이라고 단정할 수 없을 만큼 위력적인 정보로 작용하기 때문에, 조 전 청장의 발언을 일반적인 명예훼손 사건과 동일선상에 놓고 판단해서는 안된다"고 전제했다. 이 같은 전제가 성립된 이상, 발언의 사회적 파괴력때문에 더 커진 노 전 대통령 유족들의 피해에 대해 조 전 청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판단이 나왔다. 재판부는 "조 전 청장의 발언 이후 노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국민들과 비판하는 국민들 사이에 국론까지 분열됐다"며 엄벌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조 전 청장이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보인 모호한 태도도 법정구속이라는 굴레를 쓰는 원인이 됐다. 법원이 형을 정할 때 반드시 고려하는 부분이 '진지한 반성과 피해자와의 합의, 피해 회복 유무'인데도, 조 전 청장은 그런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조 전 청장이 법정에 이르기까지 피해자 측에 사과하거나 용서를 구한 적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법정에서마저 '사과한다'는 말을 하면서도 자신의 발언이 진실이라고 계속 주장하는 등 모순적인 태도를 보였고 피해 회복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양형 사유를 밝혔다.
이와 함께 최근 법원에 형성된 재벌 등 사회지도층에 대한 엄벌 분위기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8월 열린 전국형사법관포럼을 기점으로 법원 내에서는 "사회적 지위가 높다 해서 불이익을 줘도 되지만, 이익을 받아도 안 된다"는 기류가 뚜렷해졌다. 법원이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 최태원 SK 회장을 최근 잇달아 법정구속한 것이 그 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형사법관은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위법한 만큼 처벌받아야 한다는 법원 내 기류가 이번 판결을 통해 다시 증명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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