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름이 다가오니 A선배가 생각난다. 20여년 전 A가 훈련병 시절 이야기다. 당시 충남 논산훈련소에는 고된 하루를 마치고 나면, 야식으로 '보름달'이라는 카스테라가 나왔다. 비닐포장에 토끼가 그려져 있던 그 빵이 얼마나 맛나던지!
그런데 어느날 폭설로 그만 '빵'트럭이 끊겨 버렸다. 그날 밤 내무반에선 대한민국의 군수시스템, 훈련소의 무사안일주의, 그리고 기상청에 대한 격한 성토가 이어졌다. 하지만 어쩌랴? 결국 분루를 삼키며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이미 결혼해서 아들까지 두었던 A는 잠들기 전이면 천정을 수놓던 아내와 아들 얼굴은 간데 없고, 보름달만 내내 아른거렸다고 회상했다.
이 이야기는 자기 배고플 땐 아버지와 남편 노릇도 뒷전일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내비치고 있다. 그래서일까? 요사이 서점에는 '좋은 아빠' 지침서가 넘쳐난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아빠의 고민을 담고 있는 책은 별로 없다. 그저 "닥치고 좋은 아빠 해!"라는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아버지노릇에 대한 성찰이 빠진 채 몇 가지 스킬만으로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다는 발상은 역설적으로 '나쁜' 아버지를 양산할 지도 모른다.
현관문 밖의 치열한 하루 경쟁을 마치고 돌아와 보글보글 된장찌개 앞에서 오순도순 힐링을 받고 싶은 아버지들에게 이런 레시피들은 또 하나의 스트레스이자 노동이기 때문이다.
노동으로 인식되는 이상, 아버지 노릇은 피하고 싶어진다. 그러다 보니 좋은 아버지가 되려면 희생정신과 의무감으로 각오를 다져야 한다. 이래서는 '자연산' 좋은 아버지가 되기 어렵다. 이제 발상을 바꿔보자. 좋은 아버지의 '좋음'이 누구에게 좋은지 따져보자는 것이다.
자식만을 위해 아버지는 희생해야 한다는 접근법이라면 '노 땡큐'다. 그런 식의 아버지노릇은 하기도 싫고 결과도 시원찮으니 말이다. 직장 다니는 아내 대신 딸을 돌보기 위해 교사 B는 육아휴직을 했고 지금 즐겁게 집에서 애보고 있다. 제일 행복한 사람은 B다. 그 다음이 딸이고 아내다. 인간은 유희적 존재(Homo Ludens)이고 공자님도 '즐기는 사람(樂之者)은 못당한다'고 했으니, B야말로 최고의 아버지이다.
그러므로 좋은 아버지가 되려면 '아버지노릇을 어떻게 즐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아버지노릇을 즐기기 위해서는 우선 '알아야' 한다. 뭘? 자녀의 존재를! 자녀가 기쁠 때 그리고 화날 때의 표정을, 자녀를 포옹했을 때 어떤 느낌인지를. 요새 자녀의 고민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이런저런 요령은 그 이후 문제이다.
구한말 테니스를 치는 걸 본 대한제국의 고관 왈, "아니 저렇게 힘든 걸, 아랫 것들 시키지"라고 했다는 일화도 있지 않은가! 모르는데 어떻게 재미를 느끼고 즐길 수 있겠는가. 모르니까 기껏 한다는 대화가 맨날 "밥 먹었냐", "오늘 별 일 없었냐" 수준에 머물고 만다.
얼마전 서점에서 젊은 부부의 대화를 듣게 됐다. 아내가 "와! 이 책, 당신이 꼭 읽어봐야 되겠다"고 하자, 남편은 "왜 이러셔. 내가 그런 책을 볼 사람인가? 그런 책을 쓰거나 최소한 감수해야 할 사람이지!"
여기까지 듣고는 흠. 이 사람, 꽤 소신남이군. 게다가 센스도 있고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아내의 "웃기는 소리하고 있네"가 들려왔다. 순간 씁쓸했다. 하지만 기억하자. 웃기는 소리 하는 아버지, 아버지 노릇을 즐기는 남자들이 대한민국에 넘쳐야 함을.
김혜준 아버지다움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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