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런던올림픽을 고별무대 삼아 조용히 은퇴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됐던 미국 육상의 자존심 버나드 라갓(39)이 한층 업그레이드된 '엔진'을 장착하고 다시 트랙을 주름잡았다.
라갓은 지난 16일(이하 한국시간) 제106회 밀로스 실내육상대회 5,000m 경기에서 2,3위를 4~5초 가량 따돌리는 압도적인 페이스로 미국 신기록을 갈아치웠다. 라갓은 8분9초49로 결승선을 통과해 지난해 '후계자' 갈렌 럽(27)이 세웠던 8분9초72를 밀어냈다. 라갓은 이로써 실내대회 1,500m, 1마일, 3,000m, 2마일, 5,000m까지 5개의 미국 최고기록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실외 1,500m, 3,000m, 5,000m를 포함하면 모두 8개다.
AP통신을 비롯한 미국 언론들은 올해 39세인 그의 나이에 주목해 기록경신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라갓은 "사람들이 내 나이를 알고는 '어떻게?'라고 묻지만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은 끊임없는 훈련의 성과물"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 5,000m 은메달리스트 라갓은 역대 실내외 세계육상선수권에서 5개의 금메달을 손에 넣었지만 올림픽에선 노골드로 체면을 구기고 있다. 기대를 모았던 지난해 런던올림픽 5,000m에선 4위에 그쳐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라갓은 지난 2일 독일 칼스루헤에서 열린 국제육상경기연맹 실내대회 3,000m 레이스를 7분34초71로 통과해 '살아있음'을 알렸다. 이는 2008년(7분34초65) 이후 자신의 최고기록이자 지난해 7분41초44에 비하면 7초 가까이 앞당긴 폭풍 질주다.
전문가들은 트랙 육상 선수 전성기를 26~27세로 본다. 테니스가 이보다 조금 이른 나이에, 골프는 늦은 나이에도 절정의 기량을 과시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이 30세를 넘기면서 기량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생리현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라갓은 마치 이를 비웃듯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쾌속 질주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AP통신은 20일 라갓이 내달 17일 뉴욕 하프마라톤에 처음 출사표를 던졌다고 보도했다. 라갓은 "하프마라톤이 최종목표가 아니다. 풀코스에도 도전할 것이다"라며 "하프마라톤은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대회 우승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다만 전문 마라토너들과 과연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지 여부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가능하다면 최선의 결과를 얻고 싶다"며 '욕심'을 감추지 않았다.
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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