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의 하마디 제발리 총리가 정국혼란의 타개책으로 제시한 중립정부 구성안 추진 실패에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제발리 총리는 19일 몬세프 마르주키 대통령과 회동한 후 TV를 통해 "내 계획이 실패하면 사임한다는 약속을 지키겠다"고 밝혔다고 AFP통신 등이 전했다. 제발리 총리는 "이번 결정이 (정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 뒤 사임이 정국 혼란을 가중시킬 것을 우려한 듯 "내 계획의 실패가 튀니지와 혁명의 실패를 뜻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튀니지는 이달 초 발생한 세속주의 야권 지도자 초크리 벨라이드 피살 사건배후로 야권 지지자들이 이슬람주의를 표방한 집권 엔나흐다당을 지목하면서 반정부 시위가 격화했다. 외신들은 튀니지가 "2011년 '아랍의 봄'으로 독재정권을 축출한 이후 최대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고 전했다. 그러자 제발리 총리는 "정파와 무관한 기술관료 중심의 새 정부를 꾸릴 것"이라며 "구상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총리직을 내놓겠다"면서 소요를 진정시켰다.
그러나 제발리 총리의 제안은 몇몇 세속주의 야당의 지지를 받았지만 정작 자신이 속한 엔나흐다당의 반발로 18일 무산됐다. 라체드 간누치 당수 등 당내 강경파가 엔나흐다당이 차지한 주요 장관직을 내놓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엔나흐다당은 "기술관료보다 오랫동안 혁명을 위해 애쓴 정치인들이 더 정부를 이끌 자격이 있다"며 제발리 총리의 안을 비판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새 정부 구성을 맡을 후임 총리는 마르주키 대통령이 지명한다. 엔나흐다당의 연정 파트너인 세속주의 공화의회당 소속인 그는 20일 간누치 엔나흐다당 당수와 이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마르주키 대통령이 제발리 총리를 재지명할 가능성도 있지만, 제발리 총리는 차기 선거 일정이 확정되지 않는 한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제발리 총리의 사임으로 튀니지의 상황은 악화할 것이라고 외신들은 전망했다. 벨라이드 피살로 세속주의 세력과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간 갈등이 격화하고 있고 헌법초안 작성, 사회보장제도 개혁 등이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국정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관료는 "정치인들이 국가가 아닌 개인의 이해만 생각하는 바람에 국정이 마비됐다"고 AFP통신에 말했다.
국제 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19일 "정치상황이 경제 전망을 악화시킬 것"이라며 튀니지의 국가등급을 강등했다. 로이터통신은 "튀니지가 국제통화기금(IMF)과 논의 중인 17억8,000만달러 차관도 늦춰질 수 있다"고 전했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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