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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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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정치

입력
2013.02.20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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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학문의 마지막 대가(大家)로 불리는 독일의 막스 베버는 정치를 직업 또는 소명으로 삼는 사람들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 열정과 통찰력, 책임감을 제시했다. 말년의 강연을 엮은 책 에서다. 직업정치인 출현에 주목한 그는 정치를 생계수단으로 삼는 사람들을 경멸하고 진정한 직업정치인은 소명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그에 의하면 정치 현실은 어리석고 비열할 수밖에 없는데, 그에 좌절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소명을 가진 정치인이다.

■ 진보정의당 유시민 전 의원이 20일 트위터에 올린 글을 통해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떠난다고 선언했다. "너무 늦어버리기 전에 내가 원하는 삶을 찾고 싶어서"란다. 그가 말한'직업으로서의 정치'는 명백히 막스 베버에게서 빌린 표현이다. "정치란 폭력의 선용"이라는 그의 지론도 국가를 "정당한 물리적 폭력을 독점한 집단"이라고 한 막스 베버를 연상시킨다. 정치 개념에 관한 한 그는 막스 베버에게 많은 것을 빚진 듯하다.

■ 유 전 의원은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정치인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짐승의 비천함이 있고, 야수적 탐욕도 있다, 그래서 하루하루가 너무 괴롭다고 토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정치에 뛰어들었던 그다. 좋은 정치를 편다면 몇 천만 국민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으니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중 그 만큼 고귀한 게 어디 있겠느냐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에게 정치는 "성인(聖人)의 고귀함을 이루기 위해 야수적 탐욕을 상대하며 짐승 같은 비천함을 감수하는 일"이었다.

■ 그가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접겠다고 한 것은 10년 간 펼쳐온 정치실험의 좌절을 뜻한다. 그는 기득권과 기성정치를 향해 치열한 싸움을 했고 일정한 성취도 있었다. 비타협적 자세와 냉소적 언행으로 자주 분란의 가운데 서기도 했지만 근래에는 상당히 유연해지고 다듬어진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런 변신 노력에도 한계가 있었던 듯 하다. 정치 현실과의 싸움에서 후퇴하는 그가 안타깝다.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으로 누린다는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으로나마 그의 상처와 회한을 위로하고 싶다.

이계성 수석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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