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 개띠 어린이들과 그 엄마들에게 돌아오는 3월은 필시 잔인한 계절일 것이다. 초등학교 입학과 함께 본격적인 제도 교육의 트랙 위에 올라서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일하는 엄마들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자녀의 초등 1학년 시절은 젖먹이 아기 때도, 울부짖으며 엄마 바지자락에 매달리던 어린이집 시절도 꿋꿋이 버텨온 워킹맘들이 가장 많이 무너지고 마는 시기. 신생아 때만큼이나 엄마 손이 많이 필요한 자녀의 첫 학교생활을 어떻게 하면 현명하고 매끄럽게 도와줄 수 있을지, 초등 1학년의 큰 고비를 넘은 선배 워킹맘들에게 물었다.
엄마모임을 뚫어라
아이를 학교에 보낸 워킹맘의 가장 큰 애로는 커뮤니케이션 통로가 없다는 점이다. 이른바 '엄마모임'에 참여할 수 없다는 점. 아이를 학교에 들여보내자마자 학교 앞 커피전문점이나 제과점으로 출근해 자연스럽게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전업주부 엄마들이 이런 저런 정보를 나누고, 서로의 아이들에게 이모 노릇을 하는 동안 워킹맘들은 각종 학원의 셔틀버스 라인을 연결하며 오전이면 돌아오는 자녀들의 방과 후 시간을 원격 관리해야 한다. 소외는 피할 수 없는 노릇이다.
초등 3학년 아이의 엄마이자 학습 컨설팅 회사 에듀클렉스에듀케이션 이사인 김송은(41)씨는 "학기 초에 엄마모임에 속한 한 명과는 적어도 개별적 연락을 주고 받는 사이가 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아이들이 허술하게 적어 오는 알림장에만 의존할 수 없기에, 1학년 엄마모임의 정보력은 워킹맘에게 더없이 절실하다. 다만 그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는 정성과 성의는 필수. 교실 학급문고를 마련할 때 다른 엄마들보다 책을 더 많이 낸다든지, 자신의 업무와 연관된 물품 등을 제공하는 것 등이 세련되게 감사를 표시하는 방법이다.
엄마가 대통령일지라도 꼭 참석해야 하는 학교행사가 있으니 업무 스케줄을 미리 조정해두는 것도 필요하다. 학기마다 한 번씩 실시되는 공개수업 같은 행사다. 아이들에게 이날은 오로지 교실 뒤에 서있는 엄마에게 보여주기 위해 수업을 하는 날이므로, 야근을 하든 연차를 쓰든 반드시 행사에 참여한다고 김씨는 강조했다. "수도 없이 뒤를 돌아보는 아들을 보며 참석 못했다면 우리 아들이 얼마나 외로웠을까 가슴이 아릴 정도였다"고.
담임 교사와 꾸준한 대화를
문구점이 문 닫은 시간에 귀가하는 엄마들에게는 준비물도 큰 골칫거리다. 요즘은 학교에 아이들 준비물 예산이 책정돼 있어 기본적인 도화지나 색종이 정도는 제공하고, 준비물 리스트도 주간 단위로 통신문을 통해 전달된다. 하지만 그때그때 선생님이 내주는 준비물도 있으므로 자주 쓰는 물건들은 넉넉하게 사다 놓는 게 좋다.
초등학교 교사이자 초등생 아이를 둔 워킹맘 윤수련(39)씨는 "1학년 학습의 꽃은 조작과 표현 활동이므로 아이 사물함에 색연필, 사인펜, 풀, 가위, 스카치테이프 등은 반드시 넣어두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풀칠 후 책상을 닦을 수 있는 물티슈까지 넣어주면 센스 만점. 윤씨는 "요즘 초등학교는 환경교육을 강조하는 추세라 휴지 심지나 페트병, 병뚜껑, 전단지 같은 재활용 폐품을 쓸 일이 많다"면서 "분리 수거일에 싹 내다버렸다가는 당황할 수 있으니 조금씩 남겨두는 것도 좋다"고 귀띔했다.
학교에 거의 찾아가지 못하는 워킹맘들은 미안한 마음에 교사와 잦은 연락을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배식이나 청소 같은 엄마 활동에 참여하지도 못하면서 교사에게 자주 연락해 아이에 관해 묻고 부탁하기란 껄끄러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윤씨는 "선생님들이 가장 싫어하는 엄마가 말이 없는 엄마"라며 "워킹맘일수록 전화나 문자, 카카오톡 등을 이용해 담임 교사와 자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특히 아이의 학교 생활에 의문이 들거나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면 참지 말고 바로 담임과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그게 문제 해결이 가장 빨라요. 그런다고 해서 불쾌하게 생각하는 교사는 한 번도 본 적 없고요."
아이의 배변 문제가 고민이라면 쭈그려 앉아 용변을 보는 좌변기를 미리 사용시켜 보는 것도 좋다. 아이들 대부분이 학교에서 좌변기를 처음 보는 탓에 양변기에만 몰려 긴 줄 끝에 서있다가 옷에 실수하는 아이들도 간혹 있다.
아이의 자존감을 한껏 북돋워라
낯선 곳에서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1학년 아이들에게 자존감만큼 중요한 영양제는 없다. 특히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아이들에게는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어" "넌 이걸 참 잘해" 같은 격려가 꼭 필요하다.
민음사 홍보부장 이미현(39)씨는 언어발달이 빠른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소리 내 책을 읽도록 했다. "엄마는 우리 아들이 책 읽는 소리 들으면 너무 좋아. 목소리도 너무 멋있어." 그렇게 얘기하면 아이가 신이 나서 책을 낭독했다. "학교에 가면 실제로 일어나서 책을 읽으라고 시키잖아요. 훈련이 안 된 아이들에게는 호흡을 나눠서 띄어 읽는 게 꽤 어렵거든요. 그런데 그걸 잘 해낸 덕분에 자신감이 많이 붙었더라고요."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다려줘야 한다는 게 육아의 헌법이기는 하지만, 늘 시간에 쫓기는 워킹맘에게는 지키기 어려운 덕목이기도 하다. 특히 고객으로서 서비스를 받던 유치원 시절과는 달리,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하는 초등학교 시절은 엄마와 아이 사이에 이 같은 갈등이 더욱 빈번해진다. 이씨는 "답답하더라도 단추 꿰기나 책가방 싸기 같은 작은 일부터 스스로 하고 기다려 주는 훈련이 워킹맘들에게 꼭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일러스트 김경진기자 jin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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