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피고인의 유죄를 주장하고 피고인은 무죄를 주장하며 맞선다. 양측의 주장을 바탕으로 법원이 유ㆍ무죄를 판단해 형량을 정하면 검찰은 구형량보다 낮게 판결이 나올 경우 항소한다. 이것이 일반적인 형사 사건 재판의 모습이다.
하지만 법원의 유죄 선고에 검찰이 피고인의 무죄를 주장하며 항소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자신들의 판단만 옳다고 여기는 검찰의 현주소"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20일 수원지법 등에 따르면 경찰관인 유모(47)씨는 2009년 6월26일 쌍용차 평택공장에서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조합원들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변호인 접견권을 요구하며 경찰에 격렬히 항의한 권영국 변호사를 불법 체포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에 수원지법은 만 2년간의 심리 끝에 지난 6일 유씨에 대한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면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
유씨는 판결 직후 변호인을 통해 항소장을 냈고 이어 수원지검도 지난 14일 항소했다. 통상 법원에서 유ㆍ무죄를 놓고 치열하게 다투는 검찰과 피고인이 이번 사건에서는 함께 무죄를 주장하며 항소하는 진풍경을 연출한 것이다. 검찰마저도 무죄 구형은 있었지만 항소까지 한 사례를 찾지 못할 정도로 이례적이다.
이는 애초 이 사건 기소가 검찰 판단에 의해 자체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검찰은 당초 이 사건에 대해 무혐의로 판단했지만 고소인 측의 재정신청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자 줄곧 피고인을 방어하다 결국 결심공판에서 무죄를 구형했다. 재정신청이란 검찰의 불기소 결정에 불복한 고소인이 고등법원에 재판 회부를 요청하는 제도로 검찰의 기소독점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항소를 놓고 '공권력 중심사고와 기소독점 주의에 빠진 검찰의 아집'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한 변호사는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해야 할 검찰이 고등법원의 재정신청 인용결정과 1심 법원의 유죄판단에도 불구하고 무죄를 구형하고 항소까지 한 것은 자신들의 판단만 옳다고 믿는 아집을 드러낸 것"이라며 "지극히 이례적인 일로 공권력 중심사고의 극치"라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수원지검 관계자는 "법원의 결정도 충분히 합리적인 판단이었지만 긴박한 현장에서 경찰이 모든 절차를 지킨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무죄를 구형했다"며 "법질서를 위해 상급심에서 합리적인 판단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모아져 항소했다"고 해명했다.
수원=김기중기자 k2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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