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일부 지역에서 중학생들이 집 바로 옆의 학교를 놔 두고 먼거리 학교로 통학하거나 원치 않는 학교를 다녀야 하는 불편이 계속되고 있다. 학부모들의 절대 다수는 수요자중심 원칙에 따라 '선지망 후추첨'을 원하지만 일부 사립학교의 반발로 번번이 무산돼 획기적인 대책마련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경북 영주시의 A씨는 3월 개학을 앞두고 걱정이 태산이다. 자녀가 집에서 100m거리의 학교를 놔두고 자녀가 2㎞나 떨어진 곳을 배정 받았기 때문이다. A씨는 "우리 애는 그나마 나은 편으로, 친구들 중에는 통학거리가 4㎞나 되는 경우도 있다"며 "걸어 가기에는 멀고, 자전거는 위험하고 시내버스는 통학시간을 맞추기가 여의치 않아 고민"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은 시교육청이 중학교 무작위 배정 원칙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북도교육청에 따르면 도내 23개 시군 중 안동 영주 등 15개 시ㆍ군에서 올해 학생들을 무작위로 배정했고, 그 수는 9,297명에 이른다. 이들 중 상당수는 비선호 원거리 통학으로 불편을 겪게 됐다. 자신의 종교와 다른 학교를 배정 받아 고민하는 일도 생기고 있다. 특히 일부 면 지역 학생들은 2, 3차례 버스를 갈아타고 시내 중학교로 통학하는 일도 불거지고 있다.
이처럼 문제가 심각해진 것은 중학교를 배정할 때 학생 희망은 물론 통학거리조차 무시한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통상 무작위 배정을 하더라도 근거리배정이 원칙이지만, 이마저도 반영하지 않아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학부모 B씨는 "애가 제일 싫어하는 학교에 배정 됐다며 울고불고 난리를 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지었다.
해당 지역교육지원청에도 해마다 2월이면 중학교 배정 이후 학부모들의 항의로 업무가 마비되는 일이 일상사가 됐다.
반면 포항 구미 경주 경산시와 청도 의성 예천 칠곡군 등 8개 시∙군은 선지망 후추첨을 통해 민원을 최소화하고 있어 대조적이다. 최대 6개교까지 복수 지망을 허용하고, 통학거리 등을 고려하고 있다. 이들 교육청 관계자는 "일부 학생들은 원치 않거나 통학거리가 먼 곳에 배정받기도 하지만 불만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영주 등에서 선지망 후추첨제를 시행하지 못하는 것은 공립보다 교육환경이 떨어지는 일부 사립중학교 측이 '학교 서열화' 등을 내세우며 결사반대하기 때문이다.
영주시교육지원청은 2011년 초등 6학년 학부모 1,21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94%가 선지망 후추첨제를 희망하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일부 사학의 반대로 무산됐다. 한 사립중 교장은 "선지망 후추첨은 자칫 중학교 줄세우기를 초래, 일부 사립학교를 내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항변했다.
이에 대해 일부 학부모들은 "자구노력은 하지 않고 학생들의 불만과 불편을 강요하는 것은 올바른 '교육'이 아니다"고 성토했다.
영주시교육청도 선지망 후추첨제는 학생들이 3지망 학교까지 선택한 뒤 지망학교 내에서 추첨, 학생희망을 최대한 반영하는 것으로 사학 침체 우려는 기우라는 입장이다. 나이스(교육행정정보시스템)프로그램으로 추첨하면 일부 운영자만 정보를 열람할 수 있어 선호학교 편중 여부가 공개되는 것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도 교육청 관계자는 "기득세력의 반발로 수십년간 이어온 무지망 추첨제를 바꾸는 데 어려움이 많다"며 "공청회 등 설득과정을 거쳐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인터뷰] 이영직 전영주시교육장
"중학교 배정 선지원제 반대는 수요자 중심 원칙 무시한 것"
이용호기자
"학부모들이 자녀 때문에 학교 눈치 보느라 참고 있지만 조만간 불만이 폭발할 겁니다."
2011년 선희망 후추첨제를 추진했던 이영직(64ㆍ사진) 전 영주교육장은 지금도 안타깝다. 그는"중학교 추첨이 끝나고 난 뒤 교육청에는 '왜 집 곁에 학교를 두고 먼곳에 다녀야 하느냐'는 학부모 항의가 쏟아진다"며 추진배경을 전했다.
그는 학부모의 압도적 찬성을 등에 업고 선지망 후추첨제 시행에 나섰지만, 일부 사립학교 재단과 교장, 교사들의 반발로 접어야 했다. "일부 재단 관계자는 교육장실에 찾아와 격렬하게 반발했다"고 말했다.
그는 "수요자는 학생 학부모들인데 공급자인 학교에서 반대해 시행하지 못하는 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고 했다. 중학교 배정방식은 지역 교육장 책임으로 정할 수 있으나 결국 반대의견 설득에 실패한 측면도 인정했다.
이 전 교육장은 "일부 학교에서 '의무교육인 중학교까지 서열화하는 것 아니냐''사립학교에 불이익을 주려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오해"라며 "수요자중심 교육 원칙을 지키고 학생들의 불편을 최소화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용호기자 ly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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