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사 영업사원(MR)들의 방문을 정중히 사양합니다."
지난주 전국 병원과 의원 출입문에는 전에 볼 수 없던 스티커가 나붙었다. 대한의사협회 명의로 된 파란색 스티커에는 진료 차질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 있었지만 제약사 영업사원들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한 제약사 영업사원은 19일"집 드나들 듯 하던 곳인데 갑자기 등장한 문구에 적잖이 위축됐다"며 "일주일 가까이 영업에 차질이 생겨 최근엔 이직을 고려하고 있는 동료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제약업계가 연초부터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불법 리베이트로 150명이 넘는 의사들이 검찰 조사를 받은 것을 기화로 든든한 버팀목이던 대한의사협회가 등을 돌렸고, 있던 사람들은 떠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발단은 의협이 지난달 25일 업계 1위인 동아제약을 상대로 홈페이지에 올린 공개질의서. 노환규 의협회장이 "당초 '위법성 없는 계약'이라던 동아제약 측이 본격적인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리베이트'라고 말을 바꿨다"고 포문을 열면서 의사ㆍ제약사 갈등이 본격화 했다. 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제약업계에 대한 선전 포고였다"고 말했다. 리베이트 사건이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그럴 때마다 의사들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려는 듯한 제약사들의 행태에 의협의 누적된 불만이 폭발한 것이라는 것이다.
결국 문제의 스티커도 의협의 문건에 동아제약이 무시로 일관하자 의협이 실력 행사 차원에서 배포했던 것. 의협 측은 "말 그대로 의사들의 진료 집중도를 높이기 위한 조치였다"고 해명했지만 영업에 타격을 받은 제약업계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제약사들은 인재 모집에도 애를 먹고 있다. 의사들과의 공생관계가 무너지고, 불법 리베이트에 대해서는 사정 당국이 눈에 불을 켜자 취업시장에서도 찬밥 신세가 된 것. 평균 5명은 제쳐야 입문할 수 있다는 제약사 영업직 모집 경쟁률이 절반 수준으로 하락했다. 신규 채용에서 2대 1의 경쟁률도 채우지 못했다는 B제약사 관계자는 "지금 분위기라면 회사 존립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의협 관계자는 "지난 15일 제약협회 이사장이기도 한 김원배 동아제약 사장이 의협을 찾아오긴 했지만 동아제약의 말 바꾸기, 리베이트 원인규명 등에 대해 이렇다 할 해명이 없었던 것으로 안다"며 "양 측간 예전의 공생관계 회복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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