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2월 17일 서울대 문화관. 김제완 물리학과 교수의 강연을 필두로 ‘21세기의 주역, 자연과학의 현황과 전망’을 주제로 한 우리나라 최초의 자연과학 대중 강연이 첫발을 뗐다. 과학은 학자들만의 전유물이라는 사회 통념을 깨뜨린 것으로, 국내 과학계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룬 하나의 사건이었다.
총 6개의 강연이 진행된 첫 회부터 ‘소립자에서 우주까지’, ‘21세기 인류 문명과 화학의 전망’, ‘초능력 신경 컴퓨터는 가능한가’ 등 물리부터 수학, 화학, 생물, 천문학, 해양, 미래에 이르는 다양한 주제들이 망라됐다.
한 원로 교수는 “큰 수업을 열어봐야 기껏 100, 200명 두고 하는 게 고작이었는데 1,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강당을 꽉 채워 자연과학 강의를 듣는 것은 내 평생 처음 보는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초창기 강사로 참여했던 이강근 서울대 자연대 부학장은 “어느 나라의 발전과정을 보더라도 그 나라를 선진국 반열에 올려놓는 결정적 동력은 과학”이라며 “장기적인 과학발전을 위해 토대를 마련할 시점에 서울대 자연과학 공개강연이 생겼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렇게 탄생한 ‘청소년을 위한 자연과학 공개강연’이 벌써 올해로 20주년이 됐다.
한겨울 관악산의 찬 바람이 교정을 얼리는 매서운 날씨에도 매년 2월 하순이면 어김없이 1,500명이 넘는 청소년과 일반인이 문화관 강당을 가득 채웠다. 지난 19년 간 참가자 수는 3만명을 넘었다. 그동안 마련된 강연은 모두 127개. 100여명의 국내 최정상급 학자들이 강사로 나서 과학에 대한 청소년들의 호기심과 지적 갈증을 풀어줬고 도전의식에 불을 지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과학의 대중화를 목표로 이어진 공개강연은 해마다 주제를 달리하며 우리 과학이 마주한 당대 이슈를 공론화하는 장이기도 했다. 이 부학장은 “1990년대에는 유전공학에서부터 분자생물학, 초고속 통신, 현대 진화론, 외계 행성계 등 당시 개념조차 생소했던 분야들을 대중에게 소개하고, 소통한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다”고 의의를 설명했다.
공개강연은 1990년대 후반에 들어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적 연구의 소개 비중을 늘리며 세계 과학계의 현황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높이는 데 주력했다.
이어 밀레니엄을 맞은 2000년대 초반에는 수학, 역학, 온난화 연구 등 20세기 과학의 업적과 한계지점을 설명하고 생명공학 및 뇌과학, 인공위성 등 최신 분야를 소개했다. 그리고 최근 몇 년간은 ‘융합’이라는 시대의 트렌드에 따라 학문간 통섭의 가능성을 제시하며 미술 및 인문ㆍ사회학, 문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초빙하기도 했다.
오는 21일부터 22일까지 이틀간 진행될 제20회 공개강연의 주제는 ‘과학의 궁극적 질문들: 과학의 본류를 생각하다’. 강명주 자연대 부학장은 “과학이 현대사회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우리가 어린 시절 가졌던 ‘바다와 하늘은 왜 푸른가’와 같은 근본적 질문들”이라며 “연구업적뿐 아니라 대중강연에서도 탁월한 실력을 보유한 저명한 강사들의 강연은 청소년들에게 끝없는 호기심과 열정을 주는 자극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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