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장모(31)씨는 수도권 A대학 총학생회장실을 문을 두드렸다. 자신을 U엔터테인먼트 대표이자 선배라고 소개한 그는 총학생회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이모(27)씨에게 거부하기 힘든 비즈니스를 제안했다. 그 해 가을축제 행사를 맡게 해주면 뒷돈을 두둑하게 찔러 주겠다는 것이다. 이씨는 마침 자신이 지지하던 지인들이 2009년 말 총학생회장 부정선거에 연루돼 법정에 서게 되자 변호사 선임 비용을 고민하던 차였다. 게다가 A대학은 선후배간 군기가 엄하기로 소문나 거절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고민 끝에 이씨가 응하자 장씨는 그달 2차례에 걸쳐 현금 400만원을 건넸다. 결국 9,000여만원짜리 가을축제를 단독 수주한 장씨는 10월쯤'지원비' 명목으로 이씨에게 3,600여만원을 더 보냈다. 장씨가 고작 1년 남짓 되는 자리에 있던 후배에게 수천만원을 건넨 속내는 모교 축제를 지속적으로 독점 계약하기 위함이었다. 장씨는 이씨에게 뒷돈 관행을 인수인계를 의뢰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가 뒷돈 축제의 추악한 실체가 드러났다. 대학축제를 독점하려는 행사대행업체로부터 뒷돈을 받고 축제를 맡긴 총학생회장들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도덕불감증에 걸린 대학가 세태를 보여주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서울경찰청은 이벤트 업체로부터 500만원 이상 뒷돈을 받고 대학 축제를 유치하게 해준혐의(배임수재)로 이씨 등 수도권 대학 총학생회장 출신 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18일 밝혔다. 대학축제 독점계약을 위해 총학생회장 등 총학생회 간부들에게 최고 수천만원의 리베이트를 제공한 장씨 등 3명도 배임증재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경찰에 따르면 장씨 등은 수도권 대학 30여곳을 대상으로 2009년 7월부터 2012년 11월까지 총 21회에 걸쳐 1억여원의 뒷돈을 주고 대학축제를 유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장씨 등은 이를 통해 30여차례 행사를 주관해 30여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과거 대학 총학생회 간부 출신인 장씨 등은 대학축제 행사 발주권이 대부분 총학생회장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고급 술집에서 접대하는 등 친분을 쌓고 뒷돈을 뿌린 것으로 밝혀졌다. 행사 규모에 따라 최대 수천만원을 총학생회장에게 주기도 했다. 리베이트는 주로 커피숍이나 학생회장실에서 직접 현금으로 줬다.
이들로부터 돈을 받은 총학생회장 출신들은 대부분 학자금 대출을 갚거나 유흥비로 탕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관계자는 "장씨 등이 나머지 20여개 대학의 총학생회 간부들에게도 100만~300만원의 향응을 제공하고 축제 행사를 따낸 사실이 파악됐다"며 "하지만 특정 개인에게 제공된 게 아니고 액수도 상대적으로 적어 입건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대학가 축제에 뒷돈이 성행한 이유는 행사 업체 선정 시 '무늬만 입찰제'이지 실제로 수의계약을 맺는 관행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U업체 직원 한모(43)씨는 경찰에서 "대학가에 뒷돈을 대고 행사를 유치하는 게 일반화돼 있다"고 말했다.
뒷돈 거래의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전가된다. A대학의 경우 장씨와 이씨의 공모로 그 해 가을축제 예산 9,000여만원 중 절반인 4,500여만원만 축제비용으로 썼던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이 그 중 90%도 유명 아이돌 가수 섭외 비용으로 나가 사실상 학생들에겐 축제가 아니었다.
손현성기자 h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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