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민운동가 1세대'로 분류되는 경제학자 이필상(65) 전 고려대 총장이 28일 정년 퇴임한다.
1982년 9월 이 대학 경영대 교수로 강단에 선 그는 '경제 정의'를 바로 세우는 시민운동에도 앞장섰다. 90년대 경실련 정책연구위원장과 경제정의연구소장으로 활동하면서 당시 박원순(현 서울시장) 참여연대 사무총장 등 각계 인사들과 시민운동을 이끌었다. 금융실명제 도입, 한국은행 독립 등을 요구해 정부가 시스템을 바로 잡아가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다.
이 전 총장은 18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교수로 부임하면서부터 줄곧 주장해왔던 금융실명제를 93년 8월12일 김영삼 대통령이 전격 실시한다고 했을 때 시민운동을 한 사람으로서 가장 보람을 느꼈다"며 "당일 정부 발표 직전인 오후 6시쯤 한 방송사의 연락을 받고 급하게 출연해 금융실명제의 필요성과 의의를 설명했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그는 25일 정식 출범하는 박근혜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해 "경제민주화, 창조경제 등의 방향은 맞지만 과연 경제를 살릴 수 있을지는 아직 국민의 확신이 없는 상태"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 문제를 해결하는 게 경제민주화의 핵심이지만 새 정부가 얼마나 의지를 갖고 해결할지도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박 당선인이 약속한 '증세 없는 복지'에도 일침했다. "복지정책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려면 대기업 법인세와 고소득자 세금 인상 등 '부자 증세'가 불가피합니다. 지속 불가능한 공약이 있었다는 점을 빨리 인정하고 국민에게 양해를 구하는 편이 낫다고 봐요."
30년 6개월간 강단에 선 이 전 총장은 "그 동안 지도했던 석ㆍ박사 250여명이 우리나라 경제 발전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 뿌듯하다"면서도 "한국 대학사회에 영혼이 없다. 교수들은 논문 건수의 노예가, 학생들은 학점과 '스펙' 경쟁의 노예가 되는 현실에 대한 근본적 반성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2006년 12월 서울대 학부 출신으론 처음으로 고려대 총장이 된 기록과 취임 직후 논문표절 의혹이 불거져 67일 만에 사퇴한 불명예를 동시에 갖고 있다. "당시 표절 의혹이 (표절로) 확정되지 않았고, 교수를 대상으로 한 신임 투표에서도 찬성률이 압도적으로 높았지요. 다만 논란이 불거져 총장으로서 역할을 원활히 수행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해 물러난 것입니다.".
고려대를 정년퇴임하지만 3월 새 학기부턴 모교 서울대로 옮겨 경제학부 초빙교수로 '미시금융론'(학부)과 '응용금융경제학연구'(대학원) 2개 수업을 맡아 계속 강단에 선다. 고문을 맡고 있는 시민단체 '함께하는 시민행동' 활동도 이어간다. "'가수는 무대에서 쓰러질 때 가장 아름답다'는 말처럼 끝까지 강단에서 열정을 불사르고 싶어요. 경제 현실을 바르게 진단해 정확히 비판하고 의미 있는 대안을 제시할 겁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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