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1992년 1월20일 서명)을 기점으로 지난 21년간 진행된 북한 비핵화 노력이 실패한 것은 분명하다. 북한은 3차 핵실험 후 핵무기의 소형화ㆍ경량화ㆍ다종화에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늘 자신들의 핵개발 능력을 과장해온 터라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렵지만 북한의 핵무기 역량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흔히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이 북한의 핵 개발을 막지 못했다고 비난한다.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그런 비난은 한층 더 거세졌다. 진보 정권의 대북 퍼주기가 핵과 미사일이 되어 돌아왔다며 숫제 북핵 및 장거리미사일 개발에 대한 책임을 햇볕정책 탓으로 돌리는 보수 인사들도 있다.
그러나 북한 핵 개발을 못 막은 걸 햇볕정책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 DJ의 햇볕정책은 남북간 경협과 교류확대가 한 축이고 북미, 북일 수교 등을 통한 북 체제 보장이 또 다른 축이었다. DJ는 남북관계 개선 못지않게 북미, 북일 수교 분위기 조성을 위해 애를 썼지만 별 성과가 없었다. 북미관계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조지 W 부시 정권의 인식에 가로 막혔고, 북일관계는 문제를 풀려던 일본인 납치자 인정이 되레 발목을 잡았다. 그런 점에서 DJ가 구상한 햇볕정책은 한번도 제대로 추진된 적이 없었다.
북에 식량과 비료를 지원하고 경협과 관광을 확대하는 정도로 핵 개발을 포기할 것으로 기대했다면 북한정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다. 개혁개방을 북한의 살 길이라고 하지만 개혁개방을 택했을 때 체제불안이 커지는 것은 필연이다. 북한 정권이 이에 대한 외부 세계의 보장이나 대비책 없이 개혁개방으로 나설 리는 만무하다. 김정일 정권에 이어 김정은 정권도 핵무기를 자신들의 체제를 위해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수단으로 삼는 이유다.
처음부터 북한 정권에 핵무기 포기 의사가 없었는데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핵을 폐기할 수 있다는 발상부터 잘못됐다는 주장도 동의하기 어렵다. 김일성 말년에 시작된 북미 제네바협상이나 김정일 시대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 6자회담 및 북미, 북일 대화 국면에서는 북한 정권이 남북협력과 북미관계 정상화, 비핵화를 동시에 추구했다고 볼 수 있다. 북한 정권이 외부의 경제지원 및 체제보장을 핵과 맞바꾸는'플랜 A'를 추구했다고 보여지는 15년 안팎의 기간이다.
북한 정권이 플랜 A를 추구하던 때는 김정일이 나름 자신감에 차있던 시기였고, 대화와 협상을 통해 북핵 폐기 가능성이 열려 있었다. 그러나 2008년 남한에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같은 시기에 출범한 미국 오바마 정부도 기대와는 달리 대북 강경정책을 고수하자 사정이 달라졌다. 급기야 김정일이 뇌 질환으로 쓰러지면서 북한 정권은 대남, 대미 관계개선보다는 핵 및 장거리미사일 개발 본격화로 급선회했다. 체제생존전략을'플랜 B'로 바꾼 것이다.
20대 후반에 권력을 승계한 김정은은 플랜 B 전략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지난해 두 차례의 장거리로켓 발사나 이번 3차 핵실험 강행은 그가 핵무장화를 통한 체제생존전략을 밀어붙이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지금 분위기로 봐서는 김정은 정권이 웬만해서는 플랜 B 노선을 바꿀 것 같지는 않다. 그만큼 북핵 폐기는 어려워진 셈이다. 하지만 협상을 통한 북핵 폐기 노력을 포기할 단계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지난해 장거리로켓 발사와 이번 3차 핵실험 성공으로 김정은 체제는 내부적으로 지지를 굳히는 효과를 보겠지만 국제사회의 압박과 제재 강화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중국이 북한을 지원하고 감싸는 데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결국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김정은 체제는 플랜 B도 해결책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 때가 올 것이고, 다시 플랜 A로의 회귀를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섣부르게 군사적 해결이나 파국을 얘기할 게 아니라 그런 시기를 앞당길 길을 찾는 게 더 바람직하다.
이계성 수석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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