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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오래된 조건

입력
2013.02.18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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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로도토스는 기원전 5세기경 아테네에서 활약했던 지식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여러 지방을 여행하면서 자신이 직접 보고 경험하는 것들을 정리했고 여기에 주변에서 수집한 자료들을 더해서 라는 대작을 완성했다. 서양에서 정식으로 기록된 최초의 역사서이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이 살았던 조국뿐 아니라 주변의 아주 광범위한 지역에 대해서 매우 소상하게 기록하였다.

그는 동쪽 지방의 페르시아인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그들은 중요한 일에 대해서 보통 술을 마시면서 의논하곤 했다. 그리고 다음 날 그 잔치가 벌어진 집에서 모두 일어나서 술이 깨면 그 상태에서 다시 한번 그 문제에 대해서 논의했다. 만일 그때에도 같은 내용으로 합의가 되면 그대로 결정이 되었고, 만일에 의견이 달라지면 결정을 폐기하였다.' 술을 마신 상태에서 내린 결정은 이따금 참담하게 어리석을 수 있다는 것, 이것은 단지 당시 페르시아인들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술 마신 상태에서 내려진 어떤 합의에 대해서 다음 날 멀쩡한 정신으로 해장국을 먹으며 처음부터 다시 의논하는 것이 무슨 역사적 교훈을 얻을 수 있는 대단히 현명한 처사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헤로도토스가 적고 있는 바로 다음 구절이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사안에 대해서 처음 의논했을 때 술을 마시지 않은 상태였다면, 항상 술을 마시고서 그 문제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곤 했다.' 그들이 어떤 근거로 매번 술을 마시면서 중요한 결정을 챙겼는지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다. 아마도 요즈음 대한민국의 눈치 없는 중년들처럼 그저 모여서 술을 마실만한 적절한 핑계를 찾아내는 일에 불과했을 수도 있고, 또는 헤로도토스의 이런 서술이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헤로도토스가 페르시아 지방을 직접 여행했다는 것이 매우 개연성이 높은 사실이므로, 그의 말을 믿고 생각해보자면, 적어도 저 페르시아인들은 한 집단의 구성원들 사이의 의사 소통과 합의 과정에 내포된 복잡하고도 어려운 양상들을 잘 이해하고 이를 일종의 집단적 문화로 푸는 해법을 찾아낸 것으로 보인다. 논리만으로 타인을 설득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논리만으로 그 타인들을 품에 안고 같이 걸어갈 수는 없다. 그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의 마음을 장악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의사소통이라는 것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의견 교환 훨씬 이상의 것이다. 논리와 감성, 머리와 가슴은 그래서 항상 같이 움직이며 서로가 서로를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이제 다음 주면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하고 그 공식적인 임기가 시작된다. 선거는 후보들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유권자들은 여기에 귀를 기울여 누구의 말이 더 마음에 드는지를 결정하고 이를 선택으로 옮기는 과정이다. 그러니 이때 국민들은 불가피하게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의 위치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이제 온 나라를 뒤흔들었던 선거는 끝이 났고 우리들은 또 다시 천천히 이전의 삶을 다시 이어가고 있다. 이제는 그가 혹은 그들이 우리의 말을 들을 차례이다.

새로운 권력은 국민들을 항상 말과 논리와 숫자로 설득하려 하지 말고, 그 마음을 얻게 되기를 혹은 적어도 그 마음을 얻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따뜻한 가슴 속으로 들어오는 일,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소통이며, 가슴과 가슴이 그렇게 이어지는 관계가 진정한 공동체이다. 경제적 상황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지경이고 이로 인해 고통 받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조건들은 몇 가지의 시혜적인 정책들로 개선되거나 치유될 수 없을 것이다. 한 동안 주변이 모두 어두울 것이다. 이 어려움을 같이 나누고 같이 겪으며, 마음을 나누면서 천천히 작은 희망들을 현실로 만들어나가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소통은 선거 때 잠깐 쓰고 다시 내려놓을 구호여서는 곤란하다. 이 전인적이고 능동적인 소통의 과정이 어떻게 이어지느냐가 이 불안한 시기, 우리의 장래를 결정할 것이다.

김수영 로도스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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