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교수님께! ('전 대선 예비후보'라는 호칭이 너무 길어 이렇게 적습니다). 지난 대선으로부터 딱 두 달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계신 곳은 지낼 만 하신지요. 뉴스를 통해 근황은 간간히 듣고 있습니다. 오늘 이 편지를 쓰는 이유는 지난 대선의 승패원인을 복기해보자는 게 아닙니다. 역사에서 가정법적 질문이란 으레 호사가들 후일담 이거나, '사후약방문' 같은 '말의 성찬'이기 십상이겠지요. 단일화과정이 석연치않았다느니, 목도리색깔이 어쨌다느니 등이 지금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요. 교수님 사퇴 후 벌어진 모든 정치일정에 '문재인' 대신 '안철수'를 대입해서 선거일지를 재구성해본들, 선거를 다시 치르지 않는 한 그 결과는 누구도 알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재작년부터 이 나라를 휩쓴 '안철수현상'은 아직 사그라들지 않았다고 봅니다. '안철수'로 대표된 새정치 열망은 제대로 발현되지 못한 채, 지각 밑에서 방향성을 찾지못하며 꿈틀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철수현상도 '유효기간'이 있을 겝니다. 몇 년 후가 되었건, 어느 선거든 간에 교수님께서 출마만 하면 재현된다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4월 재보선을 앞두고, 안철수신당이니, 교수님 본인을 포함한 몇몇 인사들이 어디에 나올 거라느니 하는 말들이 진원지는 불분명한 채 들려옵니다. 4월과 10월에 치러질 재보선, 중요합니다. 정당별 승패 보다는 새정치를 열망한 그 거대한 민심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풍향계 라는 점에서 중시합니다.
이번 대선을 통해 확인된 점 하나를 들고자 합니다. 보수건 진보건 간에, 상식과 합리를 잣대로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결정하는 사람들이 유의미하게 격증했다는 겁니다. 저는 지난 대선기간 중 기회 있을 때 마다 컬럼과 방송을 통해 "이 나라를 '불안'에서 해방시키는 실마리를 찾는 게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이라고 말씀드려왔습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은, 사회-경제적 강자이건 약자이건 다들 두세가지 쯤의 불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직장퇴출불안, 노후불안, 공교육붕괴, 가계부채와 부동산가격하락에 따른 빈곤층으로의 전락 불안, 마땅한 성장동력을 찾지 못한 채 선진국문턱에서 헤매다 현재의 기형적 경제구조를 뜯어고치지 못하고 양극화만 심화되는 건 아닌가…. 이 모든 불안들은 결국 공동체 전체의 '삶의 질' 악화로 귀결된다는 점에 동의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을 읽고, 희망을 가졌더랬습니다. 그 책에서 교수님은 불안문제의 일단을 거론하셨지요. 그 문제를 대선의 주 이슈로 끌고나가면서 모든 후보와 유권자들이 '박 터지게' 논쟁하게 되기를 열망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번 대선이야 말로 한국사회의 미래 패러다임을 바꿀 '정치사적 중대선거'로 자리매김할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주 이슈로 확산되지 못했고, 후보단일화나 NLL(북방한계선) 등에 매몰되어 버렸습니다. 그 책임이 어디에 있는가를 따지는 것 역시 정답은 없을 겁니다.
누가 뭐라해도 지난 대선은 좋든싫든 '안철수의 선거' 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교수님은 이번에 많은 국민들께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국회의원축소나 특권내려놓기 보다 더 중요한 '새정치'는, 불안해소라고 생각합니다. 언제 어떤 식으로 '안철수 정치결사체'를 선보이고, 정치변화에 어떻게 기여하실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는 '새정치 시민운동'같은 형태를 생각해보곤 합니다. "돌아갈 다리를 불 살랐다"고 하셨지요? 교수님께 청합니다. 민주화과정 이후 시대정신으로 자리잡은 '공동체적 사고방식'의 강화와, 총괄-통일적 불안해소책을 갖고 돌아오시기를 충심으로 기대합니다.
지난 대선은 보수-진보진영이 총집결해서 치른 마지막 선거였고, 앞으로 그같은 결집은 재연되기 힘들 거라고 전망합니다. 4월이든, 10월이든 '안철수정치'의 재등장 시기 보다는, 구체 방법을 갖춘 불안해소책과 새정치 방안이 중요합니다. 새해 인사가 늦었습니다. 모쪼록 건강과 건승을 빕니다.
이강윤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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