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만약 여기서 불이 난다면 정말 큰일이겠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아찔한 곳이 한 둘이 아니다. 소방차가 접근할 수 없는 좁은 골목에 다닥다닥 붙은 집들, 목조 건물이 즐비한 한옥마을,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재래식 상가들이다. 아직도 이런 곳이 부지기수다. 서울관광 1번지인 인사동도 마찬가지로 17일 발생한 대형화재는 그런 곳들이 불길에 얼마나 취약한지 잘 말해주고 있다.
인사동 먹자골목의 한 식당에서 일어난 화재는 순식간에 건물 8채와 점포 19곳을 태웠다. 불이 나자 소방차 60여대와 소방관 180여명이 긴급 출동했지만, 주변 도로가 좁아 겨우 7대만 진압에 나설 수 밖에 없어 피해가 커졌다. 인사동만이 아니다. 가회동, 삼청동 등 북촌한옥마을과 궁정동, 내자동, 옥인동, 효자동 일대의 경복궁 서쪽 한옥마을 118개 도로의 70%도 그렇다.
현실적으로 도로를 넓힐 수 없다면 비상소화시설(소화기, 급수관)이라도 제대로 갖추어야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도로 사정에 맞는 소형소방차도 서울에 단 4대 밖에 없다. 인사동의 경우 화재진압에 대한 매뉴얼조차 제대로 없이 매년 두 번 합동소방훈련과 거주민 안전교육만 하는 게 고작이다. 작은 불도 대형화재로 이어질 위험성을 늘 안고 있었던 셈이다.
서울시의 안이한 인식도 문제다. 소방기본법은 시장이나 도지사가 화재발생 우려가 높거나 화재로 인한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을 '화재경계지구'로 지정해 특별 관리토록 하고 있다. 그러나 20년 가까이 남대문시장, 영등포 쪽방촌 등 20개 지역에서 더 이상 확대하지 않았다. 유난히 목조건물과 음식점이 많고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리는 관광특구인 인사동조차도 예산을 핑계로 포함시키지 않았다.
화재는 사전예방이 가장 좋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하면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대형참사를 겪고 나서야 부랴부랴 이런저런 방책을 내놓고는 제대로 실행하지 않는 악순환을 언제까지 되풀이해야 하나. 방심과 안전불감증으로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국보1호 숭례문이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된 것이 불과 5년 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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